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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손수 현의에게 술잔을 따랐다
[연재소설 81회] 1800년, 華城/월~금 연재
2010-01-21 11:51:10최종 업데이트 : 2010-01-21 11:51:10 작성자 :   e수원뉴스

정조는 손수 현의에게 술잔을 따랐다_1
그림/김호영

일생을 바꾸다
 그날, 정조가 현의에게 단 하루만을 달라고 했던 그날, 현의의 삶은 다른 길에 들어섰다. 그날 현의 삶은 봄과 가을처럼, 여름과 겨울처럼, 여자와 남자처럼, 삶과 죽음의 간극처럼 다른 길로 들어섰다.   

  정조는 그가 짐작하던 왕이 아니었다.
  임금은 풍문으로 듣던 왕이 아니었다.
  신분을 감추고 온 인간 이산(정조의 본명)은 현의 자신처럼 인간이었다.
  자신처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어린 세자에서 스물다섯 젊은 군왕으로 자라난 사람이었다.  

  산을 내려와 정조가 현의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가까운 주막이었다. 정조는 백동수와 이덕무는 물론 호위하는 무사들까지 물리고 현의와 독대했다. 이태와 주슬해는 백동수와 이덕무에게 맡겨졌다. 
 주안상이 들어온 뒤 정조는 손수 현의에게 술잔을 따랐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며 사는 현의라고 해도 임금의 행동은 마음에 물결을 남겼다. 

 현의에게 임금은 대부분 조선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인물이었다. 물론 부처의 가르침과 무도(武道)를 추구하는 현의로서는 왕과 자신, 왕과 백성들 모두 생명이라는 하나의 평행선에 놓인 평등한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현의는 아직 현실을 이기지 못한 자였고, 임금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의가 올린 술잔을 희고 고운 어수(御手)를 들어 마신 뒤 임금은 물었다.
  "짐에게 섭섭한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현의가 잠시 할 말을 두고 갈등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부처를 모시는 자로서 단지 제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 부분이 그러하였사옵니다."

  정조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음...... 그럴 수도 있었겠구만."
  임금은 지나치게 너그러웠다.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여유로움이라고 현의는 생각했다. 
  "불제자다워. 헌데 말일세. 자네생각이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칼을 들었는가? 그대의 칼에 사람이 다치지 않았는가?"

  현의가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아니다.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으나, 칼을 버리지 못한 삶을 살면서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더구나 불제자가 된 이후로는 더욱 더.
  "........"
  "내가 살기 위해 칼을 들어 남을 해치는 일은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라 생각하는데."
  임금의 말은 비아냥이라기보다는 현의가 미처 깨닫지 못한 현의 내부의 어떤 것을 캐기 위한 의도가 있어 보였다. 현의가 대답했다.
  "소신은 제 생명이 아니라, 아직 부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두 생명을 위해 칼을 들었사옵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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