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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칼로 죽이려한 자들의 생명은 무엇인가?
[연재소설 82회] 1800년, 華城/월~금 연재
2010-01-22 15:49:44최종 업데이트 : 2010-01-22 15:49:44 작성자 :   e수원뉴스
그대가 칼로 죽이려한 자들의 생명은 무엇인가? _1
그림/김호영


 맞춤한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의는 맞춤한 답을 내기 위한 기교 따위는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대의 말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보다 무고한 생명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현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조가 말했다.
  "허면, 그대가 칼로 죽이려한 자들의 생명은 무엇인가? 그들 또한 부처의 깨달음을 아직 알지 못한 불쌍한 중생이 아닌가?"

  현의는 문득 임금에게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세상을 규정짓는 인간의 말에는 정답이 없는 법이다. 정답 없이 다른 인식을 두고 주고받는 말들이란 기력(氣力)과 마음을 소진시킬 뿐이다. 게다가 현의는 현학(玄學)하기로 소문난 정조의 학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본 어린 시절부터 제 목숨마저 위협하는 세월을 살아내며 임금은 마음을 닦고 몸을 닦고 학문을 닦아 성군의 그릇을 키웠다. 이런 임금과 지식들을 논하고 증좌들을 따진다면 현의는 한 각의 시간조차 대적할 지식이 없었다. 

  "전하."
  현의가 젊은 군왕 앞에 엎드렸다.
  "소신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중일 뿐, 아직 부처의 가르침 끝자락도 붙잡지 못한 중이옵니다. 다만 소신은 소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바를 그저 가감 없이 실천하며 살고자 할 따름이옵니다."
  항복의 뜻은 담았으되, 항복의 의사는 아니었다. 

  "그대는 어이하여 천년 넘게 우리와 함께 한 불교가 조선에 와 이 지경이 되었다 여기는가?"
  본격적인 불교 존폐에 대한 담론을 정조는 시작하려는가. 현의는 아득해졌다. 

  위화도로 출군하던 이성계가 왕의 명을 어기고 회군을 한 뒤, 조선을 창건하면서 정책의 기조로 삼았던 '배불정책(排佛政策)'의 원인, 천년 이상 지속된 불교의 지나친 세속화, 사원경제의 심각한 팽창, 이로 인한 국가전체의 경제위기, 신진유학자들의 대거 확산 같은 원인이야 현의도 알고 있었다. 

조선은 개국한 이래 사원의 수를 줄이고, 승려들을 환속시켰으며, 사원의 노비도 빼앗아 군정에 충당했다. 어디 이뿐인가. 도첩제(度牒制:고려 말부터 승려가 출가할 때 국가에서 그의 신분을 인증해 주던 제도)를 엄하게 금지해 승려가 되는 길부터 막으려 했고, 이념에 따라 나뉜 종파도 11개에서 7개로 병합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의 중요한 직책이었던 왕사와 국사를 없앤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의는 임금이 그런 조선의 불교 정책에 대한 현의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그런 과거의 일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승은 불법을 따르고자 하는 부처의 제자이기는 하나, 드러내놓고 논쟁을 할 만한 지식이 없사옵니다. 용서하여주시옵소서."
  현의는 의미가 닮은 말을 반복했다. 정조가 현의의 얼굴을 뜯어보듯 보더니 말했다.
  "불승이 아니면서 불승인 척하려니 겁이 나는가?"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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