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네가 짐을 능멸하는 것이냐?!”
[연재소설 84회] 1800년, 華城/월~금 연재
2010-01-26 10:18:51최종 업데이트 : 2010-01-26 10:18:51 작성자 :   e수원뉴스
그림/김호영

 현의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자신도 잊었다 여긴 일들이었다.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고 속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휘둘리며 살던 때의 일이었다. 
 그 중에는 위험에 처한 처자를 구하기 위해 칼을 뽑은 일도 있었고, 현의에 대적하러 찾아온 이를 맞아 싸운 일도 있었으며, 선량한 뭇사람들을 괴롭히는 포악무도한 자를 응징했던 일들도 포함돼 있었다. 

  현의에게 이 일들은 지우고 싶은 과거였다. 공명심에 상황의 정확한 판단이나, 행동의 옮고 그름 따위를 살피기도 전에 칼이 먼저 나가던 때의 일들이었다. 하여 현의는 잊었다고 여긴 일들이었다. 갑진년 안동에서의 일은 더구나....... 

  "전하, 그 일들은........"
  현의는 마땅한 말을 알지 못했다. 지난 일들에 대한 부정은 모두가 변명이 될 것이다. 현의의 마음이 더 강고해졌다. 현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현의를 한참이나 보고 있던 젊은 임금이 말했다. 

  "그대는, 나의 치세가 불만인가?"
  현의는 당황했다. 이것은 임금으로 하문할 내용이 아니었다. 광대한 세상을 품은 자의 생각은 어디까지 뻗어갈지 알 수 없는 법, 현의는 따라갈 수 없는 젊은 임금의 생각이 두려워졌다. 
  "전하. 무식하고 미련한 산중이 중이옵니다만, 전하의 등극을 일러 조선에도 요순우탕(堯舜禹湯) 같은 임금이 나타났다는 백성들의 칭송을 알고 있사옵니다."

  요순우탕(堯舜禹湯)은 군주에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요왕'은 명군으로 알려진 중국의 신화 속 군주의 이름이고, '순왕'은 요왕 다음대의 군주로 요왕과 함께 성군(聖君)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또 '우왕'은 하나라의 왕이며 '탕왕'은 은나라의 왕으로 모두 성군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나 정조의 목소리에는 되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대도 그러한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허면, 더 이상 짐의 청을 거절치 말라."
  '하오나.......'
  현의는 그 말을 삼켰다. 대신 임금의 마음을 되돌릴 마음의 진심을 담을 다른 말을 찾으려 노력했다. 

  "전하. 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기필코 전하의 명에 응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신은 아직 그럴 그릇이 못되옵니다. 이는 부처와 하늘에 두고 하는 맹세이옵니다."
  정조의 고함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네가 짐을 능멸하는 것이냐?!"
  놀란 것은 현의 뿐이 아니었다. 방 밖에 기다리던 백동수와 이덕무, 그리고 이태와 주슬해도 분기에 찬 임금의 옥음에 놀랐다. 
 젊은 임금의 분기에 찬 목소리는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힘이 넘쳤다. 현의는 숨이 막히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글/이기담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