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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62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2-24 17:39:41최종 업데이트 : 2009-12-24 17:39:41 작성자 :   e수원뉴스
백동수의 얼굴을 뒤덮는 분노의 그림자를 보았다

[연재소설 62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누구라 했느냐?"  장안문이 열린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이태는 장안문 앞에 거목처럼 서 있는 그를 보았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알아보았다. 
 
"형님!"
  이태가 먼저 그를 불렀다.
  "태야!"
  이태가 백동수를 향해 걸어 나갔다. 백동수도 이태를 향해 걸어 나갔다.
  "형님!"
  "이태야!"
  격한 감정을 담은 소리들이 뒤섞이며 둘의 몸이 거칠게 포개졌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이로 보자면 아버지와 아들 같은 존재였으나, 같은 주군을 모시고 그 주군을 잃은 같은 슬픔은 가진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감정을 나누었다. 더구나 그들의 인연은 백동수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전, 정조가 현의를 찾던 먼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십 년의 인연이었다.  

  "안으로 드셔서."
  이태가 먼저 감정을 수습했다.
  "그러자꾸나."
  둘은 연무대에서 멈추었다.
  "내 더 빨리 오고 싶었으나."  이태는 백동수에게 보낸 천수를 생각했다. 지금 그는 대궐의 강희를 만나보라 내린 두 번째 명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궁으로 돌아간 강희의 소식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  
 
  "형님께서도 어제 아셨습니까?"
  "사시(巳時:오전 9시-11시)에 들었느니라."
  "사시에."  이태는 맥없이 백동수의 말을 반복했다.
  "11월 초사흘로 결정이 되었다는구나. 국상이."  
  이태는 눈을 감았다. 또다시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이미 임금의 죽음을 가슴에 담았다 여겼는데도 이태는 자신의 가슴 한 구석에 임금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실낱처럼 남아있었다는 것에 다시 절망했다. 그리고 이런 절망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형님."
  이태가 묘적사의 말을 하기 위해 먼저 그를 불렀다. 격한 감정이 다시 솟구쳤다.
  "무슨 일이...... 또 있는 거냐?"
  화불단행(禍不單行:화는 혼자 오지 않는다는 뜻)이라 했다. 백동수는 이태의 표정에서 불길한 그 속담을 떠올렸다.
  이태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애 쓰며 묘적사에서 일어난 일이며, 묘적사에 보낸 응덕이 살해를 당한 일이며, 현의의 부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이태는 백동수의 얼굴을 뒤덮는 분노의 그림자를 보았다. 분노는 태산처럼 크고 해일처럼 거대했다. 짙은 눈썹이 팔자로 곤두섰고, 눈에서는 불꽃이 일었다. 백동수는 그 분노 속에 몸을 맡긴 채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하여."
  비로소 백동수가 입을 열었다. 

  "너는 어찌할 생각이냐?"
  이태는 당황했다. 강희의 밀지를 받고 곧바로 스승 현의와 백동수에게 사람을 보낸 것은 그로서는 판단하기 힘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조언이 필요해서였다.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대한 지침을 얻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 백동수는 그에게, 그의 행보를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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