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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42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1-27 10:05:30최종 업데이트 : 2009-11-27 10:05:30 작성자 :   e수원뉴스
서유린은 화성 장용외영 초관들을 불러 정조 임금의 승하를 알렸다
[연재소설 42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나리꽃처럼 주홍빛의 동쪽 하늘빛이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이태는 생각을 거기에서 멈췄다.
  지금쯤 화성의 장안문을 빠져 나간 화성유수 서유린은 한양의 파루(罷漏) 때와 맞추어 승례문에 도착할 것이다. 서른세 번, 궁궐의 보루각(報漏閣)에서 시작된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는 종루(鐘樓)를 거쳐 남대문, 동대문으로 이어질 것이고, 마지막 종소리의 여운에 맞추어 대궐의 문들은 열릴 것이다. 
 
어제 축시에 당도한 대궐의 파발이 가져온 소식은 예상대로 정조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소식에는 정조가 승하한 다음날, 그러니까 6월 29일인 경진일(庚辰日)에 화성유수 서유린 또한 궁에 입시해 정조의 소렴의식에 참여하라고 적혀있었다. 더불어 도제조(都提調) 심환지의 명으로 장용외영에 대한 비상도 명해져 있었다. 장용대장의 명은 첨부되지 않았다.

  이태는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변하던 서유린의 얼굴을 생각했다.
  이태는 서유린의 곧추선 다리가 꺽이며 휘청하는 것을 보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태는 그제서야 강희가 전한 소식들을 믿었음에도 자신이 임금의 생존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품었음을 깨달았다. 

  서유린은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목석이 되었다. 이태 또한 서유린의 곁에서 목석이 된 채 그의 명을 기다렸다.  

  두 식경이나 지났을 때, 서유린은 화성 장용외영 초관들을 불러 정조 임금의 승하를 알렸다. 초관들이 받은 충격은 이태와 서유린 못지않았다. 
 임금의 두 번째 암살음모를 막았던 초관 김춘득의 충격은 컸다. 김춘득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다. 장용영 군사들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로소 어찌하여 파총 이태가 유수의 명도 없이 화성에 경계령을 내렸는지 이해했다.  

  "필시 이건 음모입니다!"
  김춘득의 첫 반응이었다. 임금의 승하 앞에 역모라는 말을 입에 담는 일은 가벼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그곳이 정조가 만든 친위군대 안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자신의 온 삶이 오직 정조 임금의 하해와 같은 성은 탓이라 믿는 그에게 임금의 승하는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정조의 암살을 막은 인물이었다. 그는 한 나라의 지존이 얼마나 쉽게 암살에 노출될 수 있는 지 몸소 체감한 사람이었다.

  "맞아요! 이건 말이 안 돼요!"
  김춘득의 말을 받은 건 초관 유심돈이었다.
  곧 그 말은 물결처럼 모인 초관들 전체로 전이됐다. 임금의 죽음, 그것을 어찌 믿으라는 것인가. 그들에게 정조는 세 번의 암살 기도도 물리친, 하늘이 보호하는 군주였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이후, 정조 앞에 닥친 수많은 음모들 또한 당당히 이겨낸 군주였다. 세자로 책봉된 이후에도 정조는 세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수많은 음모에도 당당히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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