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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52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2-11 11:10:10최종 업데이트 : 2009-12-11 11:10:10 작성자 :   e수원뉴스

끊임없이 치밀고 올라오는 진실의 소리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연재소설 52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주인이 바뀌었다
  관길야를 지나고 영화정을 지났다. 만석거를 지나고 노송지대를 지났다. 지지대 고개를 넘어 괴목정 다리를 지났다. 주슬해는 굳이 대로를 피하지 않았다. 환도와 동개궁을 차고 갑옷까지 입은 무장의 차림으로 말을 달려 한양으로 향하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사이, 태양은 동쪽 하늘 위로 솟아올라 온 세상을 밝혔다. 주슬해는 낮과 밤의 차이만큼이나 자신의 인생 향로 역시 오늘 극명하게 길을 달리했음을 절감했다. 응덕의 목을 자른 그 순간에, 파총관 이태에게 고하지 않고 화성을 나선 그 순간에.
  '아니다.'
  '그게 아니다.'
  주슬해는 차마 보기 힘든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직 태양은 동쪽 산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다. 동쪽하늘 빛이 붉었다. 주슬해의 손에 쥐어진 고삐의 줄이 어느새 그도 모르게 느슨해졌다.

  '아니다. 진실은 그게 아니다.'
  주슬해는 그러나, 자신의 마음 한 곳에서 끊임없이 치밀고 올라오는 진실의 소리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제 더는 들어도 소용없다고 치부하고 싶었다. 

  주슬해도 주어진 시간들 위에 시시각각 제 행보를 결정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의 결정은 이제 진실을 따라가는 삶의 길 대신, 욕망을 따라가는 길로 들어섰다. 응덕의 목을 자른 그 순간 보다 훨씬 이전, 화성을 나선 오늘 새벽 보다 훨씬 이전에.

  '언제부터였는가.'
  생각은 그러나 주슬해의 마음과 달리 자꾸 과거를 향해 달려간다.
  '심환지가 보낸 자를 만난, 그때부터였는가?'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 강희에 대한 연모가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다. 강희의 마음이 이미 이태에게 가 있다는 것을 안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다. 강희의 마음이 이태에게 간 그 순간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태는 고개를 휘저었다. 더는 뒤돌아 봐서는 안 된다고 주슬해는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경험으로 이미 결정한 부분에 대한 회의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쪽이 많았다. 결정한 일이 더뎌지고, 흐려진다.
  진실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주슬해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의 그릇만큼, 그가 갖고 있는 미련만큼 진실은 마음의 빈 곳을 헤집고 들어올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물론 그의 마음이 욕망을 향해, 진실의 반대쪽을 향해 온전하게 전 자신을 채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스승 현의에게서도, 친구 이태에게서도, 그리고 사랑하는 강희에게서도 더욱 멀어지는 길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되돌아가는 길은 더욱 험하고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비록 그가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간절한 어떤 시점이 온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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