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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29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1-10 16:28:11최종 업데이트 : 2009-11-10 16:28:11 작성자 :   e수원뉴스
이제 조선의 의정부(議政府)는 완벽하게 노론이 장악했다
[연재소설 29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말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말하지 않고 해야 하며, 드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드러내지 않은 채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그믐의 밤하늘에 뜬 샛별조차 모르게 해야 한다. 지극한 슬픔 속에서 모든 일은 암호처럼 이루어져야 하고, 설사 알려진다고 해도 대궐의 대비까지는, 조정의 노론 신료들에게까지는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지금 시급한 것은 군영의 안정입니다. 하여 내 어영대장을 교체하려 합니다."
 
  그때 마치 대비의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문 밖에서 궁인이 박준원(朴準源)의 등장을 알렸다. 참의를 역임했던 그는 이제 막 정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새 임금인 순조의 외조부였다. 그러니까 그는 순조의 모친 수빈박씨의 아버지였다. 
  심환지는 비로소 대비의 의중을 읽었다. 그는 대비의 명을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 

  "들게 하라."
  대비의 명을 받은 박준원이 들어섰다.
  "새로운 어영대장입니다."
  곧 박준원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신임 어영대장에 인사올립니다."

  그들 모두가 한 배를 탄 박준원을 환영했다.
  "궁성의 수비는 어떻습니까? 이상한 움직임은 없습니까?"
  대비는 정조가 위독해진 낮부터 어영대장을 바꾼 뒤 궁성수비를 장용영 대신 어영청으로 강화시켰다.
  "없습니다."
  "이현동 영의 움직임은요?"
  "대장이 영을 비운 상태입니다."

  잠시 모두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장용영, 그것은 그들 모두에게 손톱 밑에 박힌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노론이 정조의 치세에서 이토록 긴 세월 치욕을 감내하며 끌려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조의 장용영 창설을 막지 못했던 이유가 컸다. 

  대비가 화성의 장용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다 화제를 바꾸었다.  
  "북경에 가 있는 영의정 이병모를 내 영부사로 삼고 좌의정 심환지를 영의정으로 삼을 것입니다. 또 우의정 이시수를 좌의정으로, 예조판서 서용보를 우의정으로 삼을 것이오."

  심환지에게도, 이시수에게도, 그리고 서용보에게도 영전이었다.
  "윤승지는 지금 당장 내 명을 반포토록 하시오."
  대비 정순왕후의 명은 곧바로 시행되었다. 이제 조선의 의정부(議政府)는 완벽하게 노론이 장악하게 되었다. 정조가 살아있었다면 남인의 이가환과 정약용이 앉았을 수도 있는 자리였다. 

  '아,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이었던가.'
  심환지의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문밖에서 심환지에게 급한 전갈이 왔음을 알렸다. 심환지가 대비에게 예를 갖추어 일어섰다.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암호처럼, 한 밤의 그림자처럼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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