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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35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1-18 09:40:52최종 업데이트 : 2009-11-18 09:40:52 작성자 :   e수원뉴스

김체건은 몰래 구덩이를 파고 왜군들의 훈련상황을 지켜봤다

[연재소설 35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일본의 왜검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모두 일본의 국내상황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그러니까 토요토미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 100년 동안 내전을 치렀다. 이 내전을 통해 일본에서는 전문적인 직업무사, '야무사'가 등장했다. 어떤 한 분야에 전문적이 집단이 출현했다는 것은 그 분야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직업무사의 등장은 당연히 왜  검술을 발달시켰다. 

  이런 왜검술의 위력을 확인한 선조는 훈련도감과 속오군을 창설하고, 조총을 전문으로 다루는 포수(砲手)와 창검무예를 전문으로 다루는 살수를 집중적으로 양성했다. 

  광해군과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인조 뒤를 이은 숙종 또한 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숙종은 왜검을 입수하라고 하명했다. 

  이때의 김체건은 훈련도감의 창검무예를 주로 하는 살수였다. 김체건은 즉시 자원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먼먼 옛날, 쇠를 발견한 인류가 철제무기를 만들어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정복시키기 시작한 이래, 무기를 이용하는 무술은 비기(秘技)였다. 비기는 곧 나를 지키고 내 종족을 지키고,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또 하나의 무기였던 셈이다. 그것은 중국 대륙에서 생겨났다 스러진 진, 수, 당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모든 무술이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져 다른 나라로의 유출을 막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왜검술을 빼낸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김체건이 왜검술을 배우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들어간 곳은 부산에 있는 왜관이었다. 이곳에서 김체건은 일본인의 노비로 일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군사훈련을 할 때 일본은 철저하게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왜군들을 가르치는 교관들의 개인들의 훈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 그들의 훈련과정을 훔쳐보는 자가 발각되면 가차없는 처벌이 가해졌다. 죽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체건이 생각해낸 것은 구덩이였다. 김체건은 깊은 밤 몰래 왜군들의 훈련 장소 모서리 한 곳에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는 미리 그곳에 들어가 그들의 훈련 상황들을 지켜봤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김체건은 낮에 본 왜검을 따라 하며 왜검술을 익혔다. 이러기를 수년, 드디어 김체건은 왜검을 완성했다. 김체건은 즉시 왜관을 떠나 훈련도감에 복귀했고, 그의 소식을 들은 숙종은 친히 그를 찾아 그가 배운 왜검술을 보았다. 

  현의의 흐릿한 시야 앞에 그날 김체건의 모습이 그려졌다. 

  김체건은 재가 뿌려진 훈련장 한 곳에 서 있었다.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숙종은 훈련도감 훈련장 앞 높은 어좌에 앉아있었다. 신하들은 그 곁에 시립해 있었다. 김체건이 임금에게 예를 갖추고 섰다. 숙종의 시선에서 칼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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