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연재소설 38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1-23 09:54:29최종 업데이트 : 2009-11-23 09:54:29 작성자 :   e수원뉴스

  "너는 조선의 사내냐, 아니냐?"

[연재소설 38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저기 계신다!"
  "어서 모셔라!"  "예!"
  높고 낮고 젊고 나이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어지럽게 얽히더니 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욱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현의가 제자들을 올려다보았다. 적들을 베며 묻은 피들로 승복들이 붉었다. 비록 묘적사가 승려로 신분을 위장한 채 왕실의 호위무사를 기르는 곳이라고 해도 승복에 묻은 선혈은 끔찍했다. 

  현의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한양으로 갔던 현중과 석대, 그리고 현의가 베이는 순간까지 간절히 무사를 기원했던 수돌이었다.
  "왔구나, 너희들이 왔구나......!"
  현의의 말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수돌이 현의를 조심스럽게 업고는 묘적사로 내려갔다. 

  묘적사의 불빛은 숯불로 잦아드는 잔불로 가마솥처럼 뜨거웠다. 현의는 마지막 기를 모아 묘적사를 보았다. 쓰러진 제자들이 승리를 장담한 적들의 손길에 모아져있었다. 목이 반쯤 잘리고, 팔이 없고, 어깨가 베이고, 잘린 다리의 뼈가 붉은 피 속에서도 희었다. 현의는 그들의 이름들을 소리없이 부르며 절망했다. 흐린 정신 속에서도 분노가 솟구쳤다. 

  "스승님!"
  아까의 그 목소리였다. 현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강희였다.
  "네.......가 어찌........"
  강희 곁에는 복면이 벗겨진 사내 하나가 두 명의 제자 손에 붙잡혀 있었다.
  "스승님!"
  강희가 다친 현의 앞에 눈물을 보였다. 현의가 사로잡힌 복면의 적을 보았다.
  "잘 했다......."

  강희는 스승의 말이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로잡은 적을 두고 하는 말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어찌 된 게야......."
  강희가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스승님, 우선 스승님 상처부터. 얼른 산 아랫마을로 스승님을 모셔라!"
  현의는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
  "저 자에게.......서 진실을.......알아내야........할 것이야."

  현의 말은 물기 없는 고목처럼 메마르고 힘이 없었다. 그러나 강희는 수돌의 등에 스승을 업게 했다.
  강희는 안다. 지금 스승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하루 동안 숨 가쁘게 일어난 천지개벽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그러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삶의 법칙은 스승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스승님, 반드시 이 자의 토설을 받아 곧 가겠습니다! 하니 부디!"
  강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강희가 현의를 업고 사라진 수돌의 흔적을 보다 복면 벗겨진 검은 옷의 사내를 향해 돌아섰다. 사내는 무릎이 꿇린 채 두 명의 현의 제자들에게 붙잡혀있었다. 강희가 천천히 그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몇 명이냐?"
  강희의 첫 질문은 '너는 누구냐'가 아니었다. 사내가 강희를 쏘아봤다. 강희가 대답 없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조선의 사내냐, 아니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곁에 섰던 현중과 석대가 사내의 등을 칼 등으로 찍어 내렸다.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