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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시인의 '어제부터 첫눈'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12-25 14:06:06최종 업데이트 : 2017-12-25 14:18:56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병호 시인의 '어제부터 첫눈'

김병호 시인의 '어제부터 첫눈'


한해가 또 저문다. 이런저런 마무리로 허둥대며 보내기 일쑤인 십이월. 연말을 꼭 그렇게 보내야 새해를 잘 맞는 것은 아니건만, 새삼 밥 먹자니 한잔 하자니 송구영신 약속이 몰리는 것도 이유다. '어제부터 첫눈'은 그런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게 한다.

생의 어느 풍경도 정밀히 짚어내는 김병호(1971~ ) 시인은 1997년 월간문학,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백핸드 발리'를 냈는데, 특히 내면세계를 투명하고 견고하게 그린다는 평이 따른다. 매탄동과 협성대를 오가며 삶의 이면을 투시하는 듯,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물과 풍경의 비의(秘義)가 새삼 오롯하다. 

눈 내리는 겨울 새벽, '문상 나서던' 시인은 '놀이터 벤치'에 놓인 빈 컵라면'을 발견한다. 매탄동 ㄹ아파트 주민이니 그 앞의 놀이터겠다. 흔히 버려진 쓰레기 '빈 컵라면'도 시인의 시선에 잡히는 순간 아름다운 비유로 거듭난다. '누군가 밤새 키운 붉은 열매', 어느 추운 속을 덥혀주었을 컵라면에 웅숭깊은 울림을 둘러주는 것이다.

그런데 눈도 '주먹으로 얼굴을 닦아 내리듯' 온다니, 울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스친다. 그냥 오는 눈에도 상주(喪主)의 심경을 옮겨 읽게 하는 절묘함으로 행간의 풍경이 한층 깊어진다. 게다가 '마른 메아리도 함께 온다'는 부연에서는 미처 못다 한 누군가의 말이며 삼킨 울음들이 먼 하늘을 돌아와 얼굴에 내리는 것만 같다. 그 메아리들이 뭐라 자꾸 뇌고 있는 것만 같다.

'잘 견디다 갔을까,' 감상 없이 잡아낸 '문상' 길의 상념이 또 다른 연상을 불러낸다. 편안히 떠나는 것도 복이니 모쪼록 '잘 견디다 갔'기를…. 그런데 직유의 기막힌 구력으로 소문난 시인답게 다시 '구름 속의 고드름처럼'을 데려온다. '구름 속의 고드름'이라니, 그 속의 습기가 눈이 되고, 지상에 내려, 그 눈이 어느 처마의 고드름으로 맺힐 때까지, 긴 시간의 비유로 보면 이 또한 생의 함축이다. 간결한 시행이 서로를 받치며 높여가는 밀도로 행간을 한층 풍요롭게 하는 식이다.   

그런 여운은 '눈을 감았다가 오래 감았다가'에서 더 길어진다. 완결하지 않은 구절 속의 행위가 화자는 물론 상주와 망자와 독자에게까지 해당되는 성찰로 조용히 전이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다시 오래 감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 시가 건네는 고요한 치유이자 사유의 매혹이다.

어느덧 묵은해가 되는 2017년. 웃음 넘치는 한해였는가, 아니면 슬픔과 아픔을 많이 견딘 해였는가. 새해를 더 새롭게 맞는 하나의 의식처럼 '눈을 감았다가 오래 감았다가'… 다시 뜬다. 

시 해설 정수자 시인의 약력

시 해설 정수자 시인의 약력

수원을 노래하다. 김병호 시인, 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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