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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21회] 1800년, 화성(華城)
이기담, 월~금 연재
2009-10-30 11:12:28최종 업데이트 : 2009-10-30 11:12:28 작성자 :   e수원뉴스
  "복복복......." 고복(皐復)이었다. 임금의 훙을 알리는 고복소리.
[연재소설 제21회] 1800년, 화성(華城)  _1
[연재소설 제21회] 1800년, 화성(華城) _1

강희는 장용대장의 처소인 대내청을 향해 잰 걸음을 옮겨놓으며 횃불에 드러난 장용내영을 휘둘러보았다. 무기와 군수품을 보관하는 행각을 담장 삼아 동서남북으로 휘둘러진 장용내영의 규모는 웅장했다. 

장용위를 창설한 정조는 정조 11년(1787년)에 이현궁 터를 장용내영으로 정했다. 
이현궁은 원래 광해군의 궁이었다. 이것이 인조 원년(1623)에는 계운궁(啓運宮)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숙종 때는 다시 숙빈방(淑嬪房)으로, 그리고 숙종 37년(1711)에는 연잉군(延礽君)의 집이 되었던 곳이었다. 

정조는 이런 이현궁을 장용영으로 정한 뒤 기존의 부용정과 연못 같은 풍광은 살린 채 대내청 건물을 지으면서 규모를 키워나갔다. 처음 대내청 24칸, 외대청 12칸 등 모두 446칸으로 지어진 장용영 건물은 올해로 653칸이나 되었다. 더불어 정조는 건물의 규모뿐만 아니라, 연못의 물을 이용해 수세식 측간도 만드는 등 장용영 군사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했다. 

강희는 제조와 대장, 그리고 장교들이 근무하는 외대청을 지나 군사들이 막사 건물을 끼고 협문을 지났다. 남쪽 장용내영과 북쪽 장용내영을 구분 짓는 문이었다.
  "대장을 만나러 왔다."
대내청 앞에 선 숙위군사들을 향해 강희가 말하였다. 

말끝에 대내청의 한쪽 문이 열리며 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가 문꼬리를 잡은 채 횃불 속 어둠 안에 서 있는 강희에게 물었다.
  "누구신가?"
  그러나 그는 장용대장 신대현이 아니었다. 강희는 횃불 속에 희미한 그가 별장임을 알아차렸다.  
  "효의왕후전의 강희입니다. 신 대장을 뫼시러 왔습니다! 어디 계신지요?"
  "대장은 영내에 아니 계시는데, 헌데, 무슨 일이냐?"
  "왕후마마께서 모셔오라 저를 보내셨습니다!"

치솟는 불길처럼 덮치는 불길함을 칼끝으로 쳐내며 강희가 다급히 말했다. 강희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다급함에 별장이 문 밖으로 떨쳐 나서며 되물었다.
  "왕후마마께서?! 무슨 일이 있는 게냐?"
 그때였다. 대궐 쪽에서 길고 굵은 사내의 저음이 들렸다.
  "복복복......."
 고복(皐復)이었다. 임금의 훙을 알리는 고복소리. 강희는 그 소리가 창경궁 영춘헌 지붕 위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서쪽 대궐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강희는 이미 궁에서는 임금의 호흡의 기운을 확인하는 속광(屬纊)도 끝났고, 왕세자와 혜경궁홍씨, 효의왕후는 물론 대비 정순왕후와 신하들의 거애(擧哀)의 절차 또한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지금 저 고복 소리는 이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내시가 곤룡포를 받들고 동쪽 처마에 올라 북쪽을 향해 고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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