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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23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1-02 10:21:46최종 업데이트 : 2009-11-02 10:21:46 작성자 :   e수원뉴스

지난 보름 동안의 시간은 정조가 즉위하고 지내온 24년의 세월만큼이나 길었다

[연재소설 23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2. 아주 오래된 적(敵)

  기쁨보다 슬픔이 크다.
  아니, 슬픔보다 당혹감이 크다.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심환지는 속광이 끝나고 소리 내어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는 거애를 거행했음에도 현실이 꿈만 같다. 아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열나흘 전, 정조 임금의 서찰을 받았던 그때 모든 일은 시작됐다.
  경신년(庚申年) 6월 15일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는 이러하였다.

  편지를 받고 위안이 되었다.  나는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졌는데, 그동안 차가운 약제를 몇 첩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앉은 자리 옆에 항상 약바구니를 두고 내키는 대로 달여 먹는다. 어제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체면을 차리려고 탕제를 내오라고 탑교를 써 주었다.......
  -('정조어찰첩2' P442/성균광대학교출판부 1009.5.20)
 
  결국 이 서찰은 그가 정조에게 받은 마지막 서찰이 되었다. 심환지는 그 마지막 서찰로부터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은, 그리고 지금의 일은 보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이 시간 동안 임금의 몸에는 종기가 돋았고, 신하들의 찬반 양론 속에 처음 써보는 처방이 이루어졌으며, 다행히 이 처방은 효과가 있다가 갑자기 악화됐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보름 동안의 시간은 정조가 즉위하고 지내온 24년의 세월만큼이나 길었다. 특히 오늘 하루의 시간은 촌각이 일 년 같았다. 승지 한치응을 체직시키고 김조순을 새 승지로 임명할 때까지만 해도 오늘 임금의 승하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정조는 승하했고, 거애까지 마쳤다. 

  임금의 승하에 따른 조치들은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앞서 정조 임금의 승하를 예상한 조치들도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조가 승하하기 전, 묘사궁(廟社宮)과 산천에서 임금의 쾌유를 비는 기도가 거행되었다. 곧이어 궁성 호위가 강화되었고, 유교(遺敎)를 선포했으며, 대보(大寶)는 왕세자에게 넘겨졌다. 그 뒤 정조는 승하했다. 임금의 훙을 확인하는 속광과 거애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 모든 조치들의 가운데 왕대비와 그의 명을 따르는 심환지가 있었다. 정조의 승하를 확인하는 속광이 이루어졌을 때, 제일 먼저 나선 것은 심환지였다. 심환지는 국상의 대례(大禮)는 '상례보편(喪禮補編)'을 준수해야 하며 마땅히 거애와 고복의 절차 또한 '상례보편'에 따를 것을 대비에게 청했고, 정순왕후는 청을 받아들였다.
  "경비와 민폐는 성상께서 항상 아끼고 안타깝게 생각하셨던 일이다. 이번에 드는 물자는 다 대내에서 내리겠으니 대내에서 준비하기가 적당하지 않은 의대(衣闕)만 밖에서 마련하도록 하라."

  심환지는 본격적인 국상의 준비를 알리는 대비의 말을 다시 생각하며 슬픔과 당혹감을 밀치고 스멀거리며 나오는 박꽃 같고, 밤꽃 같은 기쁨을 안간힘을 다해 밀어 넣는다. 
 정조의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해왔다고는 하지만 더 중요한 조치들은 이제부터 시작될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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