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연재소설 24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1-03 10:38:23최종 업데이트 : 2009-11-03 10:38:23 작성자 :   e수원뉴스

"가장 두려운 것은 정조를 우러렀던 백성들이다!"

[연재소설 24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밤이 깊어지자 심환지는 은밀하게 영춘헌을 빠져나와 창덕궁 수정전(壽靜殿)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임금의 죽음을 대비해 취한 조치들을 점검해야 했다.

  '무서운 것은 정조가 키운 서얼과 남인들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조가 키운 장용영 군사들이다.'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정조를 우러렀던 백성들이다.'

  지금 그가 두려워하는 대상들은 모두 정조의 치세 기간, 임금이 키워놓고, 얻은 것들이었다.
  심환지의 뇌리에 지난 26년 동안 겪은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토록 막고자 했던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 뒤의 시간은 그에게, 그와 뜻을 함께 한 노론들에게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치세 동안 정조가 한 일들을 어찌 열 개의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 그러나 화성 건설은 정조 치세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화성건설, 그것은 노론 벽파에 대한 목숨줄을 죄는 마지막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다. 심환지는 화성 건설을 반대했던 당시 노론의 영수 김종수(金鐘秀) 생각했다.

  정조에 맞선 김종수는 과감했고, 당당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정조에게 패했다. 정조는 그를 죽이는 대신 봉조하로 조정에서 떠나게 했으며, 그를 제거함으로써 화성건설에 대한 반대의견을 잠재운 뒤 화성을 건설했다. 
  화성을 건설한 뒤 정조가 노론에게 손을 내민 것은 어쩌면 이제는 모든 국정을 임금의 힘으로서 가능하다 여긴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심환지의 혼잣말처럼 김종수의 뒤를 이어 노론의 영수가 된 그는 집요하게 정조의 정책들을 훼방 놓았다.
  하지만 정조는 더욱 과감했다. 정조는 '임금의 명령은 무조건 따르라'는 어명을 내려 노론을 압박했다. 물론 심환지는 처음 정조의 이런 어명을 받았을 때, '그런 하교는 부당하다' 반발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심환지는 거기서 멈췄다. 몸을 낮추고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조정에 출사한 사대부에게 냉철한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정확히 하는 것, 엎드릴 때와 떨쳐 일어설 때를 정확히 하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는 정조를 성군이라 칭하며 최대한 정조의 정국을 보좌했다. 그가 정조와 서찰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심환지는 다시 정조의 서찰을 떠올렸다.
 
  지금 같은 무더위에 두 영문(營門)을 고과(考課)하러 다녀왔으니, 돌아온 뒤로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여러 날 장마가 내리다가 하루아침에 맑게 개었다. 어제 낮에 마침 칠언고시(七言古詩) 1편을 지었다.......남에게는 보여주지 말고, 만약 한가한 틈이 있거든 여기에 차운하기를 바란다........
  -(<정조어찰첩2> P440/성균광대학교출판부 1009.5.20)

  경신년 6월 9일에 정조에게 받은 서찰이었다. 임금에게서 받은 마지막 서찰에 앞서 받은 서찰. 임금은 자신의 신상의 병세며 소소한 시작(詩作)까지 그에게 피력하고 있었다. 어둠 속 심환지의 얼굴에 설핏 웃음이 번져났다.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