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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걸 시인의 '버드나무 서생(書生)'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09-01 09:14:17최종 업데이트 : 2017-09-01 17:44:27 작성자 :   e수원뉴스
최홍걸 시인의 '버드나무 서생'

최홍걸 시인의 '버드나무 서생'


예상보다 가을이 빨리 와 반갑기 그지없다. 비 끝도 징그럽고 더위 끝도 길더니 무슨 조화인지 서늘한 바람이 성큼 다가와 아침을 깨우는 것이다. 아, 얼마나 기다린 가을바람의 맛인가.

그런 바람 속의 방화수류정을 그린 최홍걸(1945~) 시인은 198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물의 표상을 의식 안으로 침하시켜 깎고 다듬어 시로 만들어내는' 시인으로 평가 받으며 '잃어버린 江', '해인(海印)의 詩', '바람은 집을 짓지 않는다', '꽃의 이름을 지우고 싶다' 등의 시집을 냈다.

방화수류정은 누구나 꼽는 수원화성의 제1경. 그만큼 격조 높은 아름다움에 시와 그림과 사진의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일찍이 '남제장류(南堤長柳)'로 절경을 날리던 방화수류정과 주변 버드나무를 '서생'으로 그린 시는 처음 만나지 싶다. 버드나무야 동아시아 시에 많이 등장하는 대상으로 시의 지음(知音)처럼 즐겨 왔지만….

'버드나무서생'이라, 어울리는 명명이다. 바람이 선들 지날 때면 더없이 그럴듯한 서생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붓춤을 추'다니, 단순한 서생이 아닌 게다. 붓으로 글씨 잘 쓰고 진정 좋은 글과 글씨에 닿기까지는 길이 너무 지난한데, '춤'까지 춘다면 그 이상의 경지라야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바람의 말씀을 받아쓰'기에서 비롯되는 것. 그런 행위가 끊임없이 계속될 때 '붓'의 '춤'으로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용연 물결화선지에/언뜻언뜻 내비쳤다 지워지는/빛과 바람의 경전'은 그런 가운데 조금씩 보여주는 그 무엇. '경전'이라는 표현에는 그 시간을 높이 읽는 시인의 시선이 담겨 있다.

하지만 비유는 다시 전복된다. '버드나무서생'이 평생토록 붓춤을 추어도' 남기는 게 없기 때문. 오죽하면 '어떤 서체도/한 자구(字句)의 문장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을까. 이 구절을 곰곰 새겨보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일이니 자연은 굳이 자신을 세우거나 남기려 애쓰지 않고 그냥 살아갈 뿐이라고 끄덕여진다. 그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무위(無爲) 같은 격조랄까.

가을의 버드나무 붓춤은 봄과 여러 면에서 완연히 다르다. 봄에는 무엇보다 생명의 환희가 깃들어 있지만 가을에는 쇠락 속의 마무리 같은 적막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말라가는 잎들의 느릿해진 춤과 누런 빛깔도 또 한해의 소임을 마치고 가는 뒷모습의 여운이리라.

버드나무서생 붓춤 보러 바람맛 좋은 방화수류정에 선다. 탁 트인 눈맛 즐기며 가을바람의 촉감을 만끽한다. 수원 사는 별미 중의 별미에 새삼 감탄하며!  

시 해설 정수자 시인 약력

시 해설 정수자 시인 약력

수원을 노래하다, 최홍걸 시인, 방화수류정,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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