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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시인의 '원본(原本)'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10-13 20:36:32최종 업데이트 : 2017-10-29 11:31:04 작성자 :   e수원뉴스

정진규 시인의 '원본(原本)

※ 사진 설명 : 정진규 시인의 안성리 보체리 뒷산 정씨 문중 묘역에 모신 표천공 정홍순의 묘. 오랜만에 돌아온 초상화 사진을 앞에 두고 정진규 시인은 극진히 예를 갖췄다. (사진 제공/정수자 시인)



한 시인이 가니 한 시(詩)가 저문다. 지난 9월 28일 한국문단의 애도 속에 떠난 정진규(1939~2017) 시인. 위 시에서 다루는 표천공 정홍순(1720~1784)은 정조며 수원과 관련이 있는 데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연 조선 명신전의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표천공의 후손인 정진규 시인은 1960년 등단 후, 시집 12권과 육필시집 1권에 시선집 2권 그리고 시론서 등 끊임없는 시적 탐구로 한국시의 지평을 넓혀왔다. 특히 산문시에서 개척한 새로운 영역은 시인 특유의 독보적인 운율과 형식으로 하나의 '원본(原本)' 같은 위상을 지닌다. 한국적 고전미학으로 심화․확장한 시의 미적 경계가 새로운 궁극을 이루었다는 게 중평이다.

 

위 시에는 수원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시를 쓰게 된 '초상 객지 한 벌'이 수원화성박물관과 관련되기 때문이다(실은 정씨 가문 유물이 아주 많아 박물관에 기탁 받고 싶었지만, 유물은 다른 사정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갔음). 그때 정홍순 초상화는 일본 천리대 소장이라 화성박물관에서 어렵게 이미지를 받아 확대한 것인데, 시인과 똑 닮아 영락없는 족보를 보여줬다.

 

시인께 전해드리려고 영정처럼 정중히 들고 간 액자를 시인 댁(안성시 보체리) 뒷산의 정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 시인은 표천공 묘 앞에 제를 올린 후 시를 읊으며 초상화 모시는 예도 극진하게 갖췄다. 오래 전 잃었던 선조의 초상화 그것도 사진이건만, 조상 모심의 예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돌아오'신 초상화인 만큼 지극한 모심이었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묘지기를 자처한 시인이 조상 묘역을 조석으로 오가며 시(詩) 모시는 나날이 한동안 흐뭇이 전해졌는데 그만 떠나신 것이다. 시집 준비 직전까지 큰 고통을 숨기고 있다가 출간 직후에야 알렸다니 작정을 한 또 다른 '거(居)'랄까. 스스로 다른 세상에 거(居)할 때를 찾아 '모르는 귀'로 마지막 시의 집을 짓고 '돌아'감을 단행한…

 

명신전 때 학예사 인기투표에서 제일 많은 표를 받았다는 정홍순. 1762년 예조판서 겸임 시 사도세자의 장의를 주관하며 세자의 의복·금침·악모대리 등을 세심히 보관했다니 일찍이 남다른 예를 지녔던 분이다. 그 공을 높이 산 정조가 우의정으로 임명, 이어 좌의정에 제수되는데 높은 벼슬에서도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했다고 한다.

 

'이모(移模)'의 '슬픈 환국'에서 우리 역사를 다시 톺아본다. 얼마나 많은 유물이 외국에 '피랍되어' 있는지도 돌아본다. 조상에 대한 예 갖추기 힘들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가는 명절 차례도 생각해본다. 아직은 부모니 고향이니 자신의 '원본' 찾고 함께하는 정경이 더 있지만, 곧 다른 한가위 풍경이 많아지리라.

 

그래서 더욱, 극진함 앞에 숙이게 된다. 시 앞에서는 더한 지극함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극을 끊임없이 넘어가고 또 다른 극을 여는 미적 진경도…

 

시 해설 정수자 시인 약력

수원을 노래하다, 정진규 시인, 표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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