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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야유(夜遊)’의 시운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03-17 11:31:16최종 업데이트 : 2017-03-17 11:31:16 작성자 :   e수원뉴스
강 남쪽 도회지에 마차들이 몰려들어라/봄이 신풍의 천하사람 술잔에 들었도다 /미로한이라는 정자가 이렇듯 좋아서/이틀 밤 긴 촛불 아래 또 정신을 모았네
정조 '야유(夜遊)'의 시운_2


정조의 시에는 우리를 퍼뜩 깨워주는 것들이 많다. 이 시도 짧고 평이하지만 뭔가 들려주는 게 더 있다. 봄을 맞는 흥겨움 속에 묘한 일깨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시국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읽어볼 수도 있겠다.
 
시에 등장하는 미로한이라는 정자 未老閒亭. 화성행궁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정자다. 그 뜻은 독자도 짐작하듯, 아직 덜 늙어 한가로이 쉬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 뜻이며 이름이 좋아 정조의 마음이 더 크게 와 닿는 것인가. 아니면 쉼 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남은 왕으로, 그리고 당대의 학문과 예술 등 발전을 최고로 이끌어낸 나라 운영의 본으로, 양위 후 물러나 쉬려는 노후가 더 지극해지는 것인가.
 
때는 바야흐로 봄. 정치도 우리가 그렇게 목 놓아 부르던 봄을 맞았다. 가히 '봄이 신풍의 천하사람 술잔에 들었도다' 할 정도다. 진정 바라던 봄이 만개한 표정에는 기대와 설렘이 실린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이 다 낡도록 써왔는데 올해는 정말 봄 같은 봄이 놀랍게 와 닿은 것이다.
 
거기에 신풍(新豐)을 얹어본다. 신풍은 ' 고조(漢高祖)의 아버지 태상황(太上皇)이 장안(長安)의 궁중(宮中)에 있으면서 항상 고향 풍읍(豐邑)을 잊지 못하므로, 한 고조가 여읍(驪邑)에다 고향 풍읍과 똑같은 마을을 개축하여 태상황을 살게 했다. 태상황은 날마다 여기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닐었는데, 후인들이 이곳을 신풍이라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후 신풍은 제왕의 고향, 또는 귀족들이 모여 하는 연유(宴遊)의 비유로 쓰인다.
 
비유에 비추어보면 정조가 왕위 물려주고 수원화성에 내려와 태평성대를 누리려 했다는 해석이 맞다. 행궁 앞의 신풍루도 그런 마음을 담은 것인가. 그러니 정조가 '마차들이 몰려'드는 '강 남쪽' 이곳의 마을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흐뭇했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오죽 좋으면 '봄이 신풍의 천하사람 술잔에 들었'다고 했을까.
 
그 뒤를 잇는 구절은 정조의 호학(好學) 군주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틀 밤 긴 촛불 아래 정신을 또 모았네'라는 결구가 놀기 좋을 미로한정에서조차 무슨 일인가 했던 정조의 모습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긴 촛불 아래 정신을 모았'다는 것은 뭔가 쓰거나(시를 짓든) 읽거나 나아가 머리 맞대고 했을 국사에 대한 논의 등의 암시로 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이틀 밤'이나!
 
일국의 영도자란 통찰력과 문제해결 능력과 사람 골라 쓰는 능력 등 요하는 게 아주 많은 큰 자리다. 그만큼 열어놓고 숙의하며 더 좋은 의견과 방법을 찾아야 하니 정자에서도 편히 쉴 수만은 없는 엄중성을 드러낸다. 대통령을 지내고 나면 팍 늙어 보이는 것도 나라 운영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증좌다. 그런데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뛰어드는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정조나 세종이 웃겠다 싶다. 모르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넘치는 말로 당분간 어지러울 것이다. 그럴수록 '봄의 신풍이 천하사람 술잔에 들었도다' 외치는 것 이상의 좋은 꽃맞이 말이 없겠다. 특히 '신풍'의 사람살이를 위한 봄맞이라면 수원화성에 사는 우리의 즐거운 호사가 아니겠는가.
 

정수자시인의 약력
정조 '야유(夜遊)'의 시운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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