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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시인의 '쇠 속의 잠3'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01-06 10:57:29최종 업데이트 : 2017-01-06 10:57:29 작성자 :   e수원뉴스
최문자시인의 '쇠 속의 잠3'_2
최문자시인의 '쇠 속의 잠3'_2


새해 새날 아침이면 사람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린다. 만날 같은 해가 뜨는 것이건만 같은 세상도 마음에 따라 일신(一新)할 수 있는 것. 새로운 시작을 꿈꾸거나 혹은 무슨 소원을 빌기 위해서도 마음의 손을 모은다. 새 태양 앞에 자신을 새로 닦아 세우는 의미도 얹어서.
 
그 속에는 더러 깨어나지 못 하는 식구의 잠을 깨우려는 간절한 기도도 있을 것이다. 노후의 긴 잠이 겁나는 고령화 사회의 그늘도 도처에서 점점 늘고 있으니 말이다. 요양병원의 보다 나은 관리를 청하는 게 이즈음 모심의 추세지만, 어디든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은 힘들게 마련이다. 이 시는 그런 문제적 현장을 짚으며 우리 사회의 그늘진 면을 일깨운다.

한때 총장 시인으로 유명했던 최문자(1943~) 시인. 협성대 총장으로 재직할 동안 '시 읽어주는 총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시인은 1982'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7권의 시집과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사상의 상징적 해석' 등 연구서를 냈다. 상처의 내면화나 그것을 비극성의 힘으로 견디며 미학화하는데서 우러나오는 곡진함이 독특한 시세계를 이룬다.
 
이 시에서도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터인 '와우리 성애원'과 버려진 차들의 터인 '금곡폐차장'의 등치로 주의를 환기한다. 그러면서 '쇠와 살 대고 살면서도/쇠와 섞이지 않는 강아지풀 하나'에 집중하는데 이를 통해 밀려난 처지들의 '무쇠더미 속' 잠이라도 살아있음의 증언임을 보여준다. 간신히 살아남은 버팀은 '벌써 10년 넘게/실성한 사람들이 들락'대는 '성애원'의 모습에 겹쳐진다.
 
힘들게 생을 견디는 존재들이지만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사람 살 대고 살면서도/사람과 섞이지 않는 사람들이/아슬아슬하게 그날 그날들을' 보내건만 '웃고 지내'는 모습도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실성' 자체가 세상의 규율과 삶의 조건 등에서의 해방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희망의 기미를 읽는 것은 시인만이 지닌 시선의 힘이다.
 
'. 가자./화성을 벗어나 서해로!' 외쳐보는 자체가 꿈일 밖에 없다. '한밤중'에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푸르딩딩한 강아지풀 뽑아들고' 달린 게 결국 '쇠 속의 꿈'으로 끝나니 말이다. 비록 허망하게 깨고 말지만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꿈의 꿈이다. 일찍이 ', 날자, 날자꾸나'(이상, '날개')로 그렸듯, 꿈이야말로 존재가 가장 막장 바닥에서도 잡아야 하는 푸른 지푸라기이므로.
 
새해 앞에서 아픈 꿈을 읽는 것은 삶을 추스르기 위해서다. 남의 불행을 기운 삼자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의 지엄함을 다시 느끼며 나아가는 것. 힘든 사람들이 많아질 때는 더욱 힘을 돋우며 가야 한다. , 가자. 새해 새로 펼쳐질 삶을 또 새롭게 쓰기 위해!

최문자시인의 '쇠 속의 잠3'_3
최문자시인의 '쇠 속의 잠3'_3

수원의 시, 시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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