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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술 시인의 '고등동 여인숙'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01-23 09:09:46최종 업데이트 : 2017-01-23 09:09:46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대술 시인의 '고등동 여인숙'_2
김대술 시인의 '고등동 여인숙'_2


설날이면 외로움이 더 크게 보인다. 아니 방 안에 틀어박혀 더 안 보인다. 어딜 가든 가족끼리니 명절 연휴를 혼밥과 혼영과 혼술로 견딜 것이다. 부모형제나 친지 만나면 취직, 결혼 등 걱정 듣기 괴로워 피하는 게 상책이 된 것이다. 세상이 점점 그렇게 혼자 웅크리게 한다.
 
이 시도 구석진 삶의 실상을 보여준다. 김대술(1958~) 시인은 '수원 다시서기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의 센터장이자 성공회 신부다. 2011'시와 문화'로 등단한 후 시집 '바다의 푸른 눈동자'를 냈다. 오랫동안 노숙자 돌보는 일을 해온 신부답게 시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바탕으로 시적 외연을 확장하며 사회적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시인은 '고등동 여인숙'에 깃든 '화물트럭 운전기사'의 곤고한 삶을 들여다본다. 고등동은 수원시에서도 행정적으로 힘들어하는 곳.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데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마을 곳곳이 버려진 모습이라 범죄로 이용당할 만한 음습함이 있기 때문이다. 막다른 곳일수록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찾아들기 쉬우니 안전 등 여러 가지 문제와 우려가 겹치는 것이다.
 
그런데 '저녁 햇살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니 수원의 서쪽 마을답다. '무너지는 뇌졸중만 남고/질주하는 광장을 바라보던/길다란 무료급식 줄에서 만난 삼년 전과/똑같이 춥지 않다'는 것은 그런 햇살 덕분일까. 하지만 '운전석 한 평에서/여인숙 방 두 평으로' 겨우 옮겨와 '이불 한 채, 가스버너, 밥통과 수저/그의 지친 몸처럼 엎어진 막걸리 병'만 상주할 뿐이다. 흔히 '달방'으로 불리는 여인숙 셋방에는 막장으로 내몰린 생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익어가는/인도산 향긋한 카레 냄새가/노을처럼 맛있다'면 잠시 쉴 수는 있겠다. 열악한 상황 견디는 중이라도 '고등동 여인숙''상처난 것들'을 안아준다면 다행이다. 그런 날은 더 춥고 고달픈 노숙인들보다 조금 나은 삶이라고 끄덕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보다 더 막다른 쪽방의 삶들과 겹쳐 읽으며 고등동 쪽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달랑 달방의 삶은 암울하다. 누구나 추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불안한 세상. 올해는 어디서 무너져 왔거나 노숙에 내몰려 쓰러졌거나 다시 이웃으로 어울려 살 수 있기를. 사람이 존중 받는 삶을 꿈꾸는 수원이라면 마땅히 앞세울 실현이다. 고등동이 따뜻해져야 다른 변방들도 온기가 번질 것이다.
 
'길을 걷는 것은/외로움이 그리움을 업고 가는 것', 그렇다면 함께 걸어야 더 나은 세상도 열 것이다. 낡은 여인숙의 삶을 보며 모쪼록 빈부, 계층, 민족, 성별 차별 없이 함께 웃는 세상으로 나아가길 빌어보는 정유년이다.

김대술 시인의 '고등동 여인숙'_3
김대술 시인의 '고등동 여인숙'_3

수원의 시, 수원의 시 해설, 고등동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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