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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환신 시인의 '평동, 인동이 할머니'
詩해설 - 정수자시인
2016-08-19 13:59:36최종 업데이트 : 2016-08-19 13:59:36 작성자 :   e수원뉴스
용환신 시인의 '평동, 인동이 할머니'_2
용환신 시인의 '평동, 인동이 할머니'_2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의 연속. 폭염은 노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특히 노인들에겐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겐 흔적이 크고 깊은 것이다. 쪽방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직 수원의 변방인 평동도 힘든 여름을 나는 어른들이 많을 듯하다.
 
그런 평동의 삶에 주목한 용환신 시인은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회 기관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문학의 미적 자율성보다 사회적 실천에 힘을 더 기울여온 이른바 참여파 시인의 범주에 든다. 특히 1987년 이후 수원 지역의 민주화운동에 밑불을 지핀 선도적 역할은 큰 힘이 되었다고 회고된다.
시인은 민중의 삶과 꿈을 장시집 '겨울꽃'에 담아낸 바 있다. 광교산의 정기를 정신적 기둥 삼아 역사적 격랑을 헤쳐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겨울에도 꽃을 피울 만큼 힘찼다. 그와 달리 이 시집에는 주변의 일상을 진솔하게 그린 시편이 많은데 어려운 사람을 향한 따듯한 시선은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평동'으로 대변되는 소외된 삶과 민초에 대한 애정이 시적 기조를 이루는 것이다.
 
평동 인근의 삶을 구석구석 살피는 시인의 눈에는 곤고한 이들의 삶과 애환이 더 보이게 마련이다. 평동을 뜨고 싶어도 못 뜨는 사람이나 변방으로 내몰린 채 힘겹게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 열고 만나는 시인의 이웃이자 이 땅의 민초인 때문이다. 바닥의 삶을 버텨내는 중에도 힘을 잃지 않는 평동의 삶은 그래서 더 꿋꿋하다.

집 나간 며느리에 아들까지 떠난 집에서 손자 '인동이'를 기르는 '인동이 할머니'도 더없이 힘겨운 처지에 처해 있다. 하지만 '동직원' 말대로 '황색카드' 만들면 도움도 받고 조금 편해질 텐데 그것을 마다하는 자존심도 굳세다. 스스로 삶을 씩씩하게 헤쳐 가는 모습은 민중의 건강성은 이런 심지 굳은 모습에서 나온다. 주체적인 삶의 전형일 뿐 아니라 자신의 희망을 완성해가는 바람직한 민중상의 한 제시인 것이다.
 
'이른 아침' 할머니가 '갓 쪄낸 찐빵/뽀얀 김 먼저 앞서는 함지박 이고' 나서는 모습. 이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으로 환치되며 시 전편에 뜨거운 활력을 부여한다. 그곳이 다름 아닌 '매산시장'이라 수원의 독자에게는 그 '뽀얀 김'이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언젠가 우리가 만난 빵인지, 시장을 훤히 떠올리며 문득 가보고 싶게도 만드는 것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함지박 이음질로' 나날을 꾸려가는 할머니의 '찐빵'. 그 뜨거운 빵 앞에 어찌 숙연해지지 않으랴. 그 빵을 꼭 사먹어야 할 것 같은 마음마저 먹게 한다. 휴가철 작렬하는 태양 아래 국도변에서도 찐빵을 더러 팔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평동 인동이 할머니'의 빵 함지박이 겹치곤 했다. 그러면서 그 손자는 지금쯤 많이 컸을지, '함지박 이음질'의 긴 고통이 끝내 환희로 빛나길 빌기도 했다.
 
너르고 평평한 벌말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평동'. 10전투비행단이 가까운 탓에 오랜 낙후와 피해를 힘겹게 견뎌왔다. 하지만 비행활주로를 옮기면 새로운 동네로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될 것이다. 모쪼록 그간의 소외를 넘어서는 변화는 물론 문화 예술도 즐길 수 있는 멋진 동네로의 도약을 기대한다.

용환신 시인의 '평동, 인동이 할머니'_3
용환신 시인의 '평동, 인동이 할머니'_3

수원의 시, 수원의 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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