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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시인의 '화성장대(華城將臺)에서'
詩해설 - 정수자시인
2016-09-26 08:53:50최종 업데이트 : 2016-09-26 08:53:50 작성자 :   e수원뉴스
박수빈 시인의 '화성장대(華城將臺)에서' _2
박수빈 시인의 '화성장대(華城將臺)에서' _2


한가위 달빛이 조금씩 사윌 때면 화성도 음영이 짙어진다. 그런 저녁 성곽 따라 걷는 맛을 어디 비하랴. 마치 고전의 오솔길을 혼자 걷는 듯 호젓하고 그윽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맛에 성곽의 안으로도 밖으로도 걸어보곤 한다. 그러다 화성장대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박수빈(1963~)도 그렇게 화성장대를 찾곤 했나 보다. 광주 출신이지만 수원에 신접을 차려 살다 수원에서 시인이 되었다. 2001'다층'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달콤한 독', '청동울음'을 냈고, 다시 평론 등단을 하더니 평론집 '스프링 시학'도 냈다. 무의식을 파고드는 탐구를 종종 보였는데, 이 시에서는 서정적인 면이 더 드러난다.
 
화성장대는 화성 서쪽의 장대고, 동쪽의 장대는 동장대. 서장대, 연무대로 더 많이 불린 두 장대는 화성을 호위하는 느낌에 볼 때마다 든든하다. 군사시설로서의 위엄은 물론 정조가 직접 지휘를 하거나 군사훈련을 살피는 등 일찍부터 중요성이 강조된 곳이다. 건축물만 봐도 축성 정신과 위용이 풍기는데, 화성장대에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는 맛이 또 일품이다.
 
시인도 그런 산책에서 시를 얻었는지 걸었던 흔적이 시행에 고루 배어 있다. '솔바람소리에 실려 오는 연무대 팽팽한 활시위'를 멀리 보며 '새처럼 나는 동이족 후예의 은유'로 서장대와 동장대를 아우르는 것도 화성을 잘 아는 산책 끝의 사유들이다. 두 장대가 '동이족 후예'임을 확인케 하는 대목에서는 활을 특히 잘 쐈다는 정조를 절로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곰곰 짚이는 것은 '맞물린 관계의 습기'.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와 뒤얽힌 역사 그리고 화성 축성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보면 관계란 얼마나 깊고 무서운 끈인가. 우리가 태어난 힘이자 살아가는 힘인 끈이 때로는 부정부패를 넘어 죽임에까지 이르는 줄이 되지 않던가. 그런 관계가 안과 밖을 만들어 왔으니 시인이 '성내인가 밖인가' 뇌는 말에서 우리네 삶의 안과 밖도 다시 들여다뵌다.
 
어쩌면 당신도 '손을 뻗어 보지만 이르지 못하는 거리'에 있을까. 당신의 당신도 그러할까. 하지만 '도깨비바늘은 언제 옷자락에 붙어왔나' 싶은 산책 끝에서 다시 돌아본다. 나의 어느 섶에도 그런 '바늘' 같은 게 붙어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쉬 끊이지 않는 '습기' 어린 끈이 우리를 또 살게 한다.
 
오르면 크게 외쳐보고 싶은 화성장대. 단풍이 조금씩 드는 요즘 거기 올라 시정의 먼지도 좀 씻어야겠다. 사위어가는 가을 달빛에 기대어 맛 잘 든 가을바람도 길게 누려봐야겠다.

박수빈 시인의 '화성장대(華城將臺)에서' _3
박수빈 시인의 '화성장대(華城將臺)에서' _3

수원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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