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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수 시인의 '연무동사신(私信)'
詩해설 정수자 시인
2016-10-28 19:36:40최종 업데이트 : 2016-10-28 19:36:40 작성자 :   e수원뉴스
박석수 시인의 '연무동사신(私信)'_2
박석수 시인의 '연무동사신(私信)'_2


연무동 추억을 여러 편에 쓴 박석수(1949~1996) 시인. 요절시인 시전집 형식으로 우리 앞에 되살아온 시인은 연무동의 길과 냇물과 전봇대 같은 삶의 기억들을 들려준다. 평택 출신이지만 수원의 학교를 다니며 만나온 수원의 여러 표정을 시에 담아낸 것이다.
 
박석수 시인은 1971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후, 1981'월간문학' 신인상에 소설도 당선되며 시와 소설을 같이 썼다. 시집으로 '술래의 노래', '방화(放火)', '쑥고개'가 있고 '철조망 속 휘파람', '차표 한 장' 소설집을 냈다. 특히 '쑥고개'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기지촌 문제가 동두천에 집중될 때 시인의 고향인 송탄 기지촌의 현실을 치열하게 그린 시집으로 주목 받았다.
 
이 시에는 시인의 연무동 생활이 애틋이 재현된다. '영산물을 뜨러 2킬로미터의 새벽/산길을 오르내린' 기억부터 당시의 연무동에 쌓인 소년의 발소리들을 되살리고 있다. 힘들고 고된 시절이었겠지만 슬프게 전해지진 않는다. 추억의 힘이라기보다 '꽃이 수줍게 잠 깨는 소리'를 듣는 그만의 감각들이 오롯이 자란 시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차거운 영산물에 어리던 내 영혼'을 보는 남다른 눈이 소년과 늘 동행했다. 팔달산 '나무 사이를 달음질하는/새벽 종소리를 데불고' 오간 소년. '아버지의 불호령'에 나간 새벽길이라도 홀로 높았을 것 같다. '영산물'은 행궁 뒤편 팔달산자락의 바위틈에서 나와 영산(靈山)의 물로 여긴 수원 사람들이 많이 떠다 먹었다고 한다(임병호 시인).
 
그런 나날에 빠질 수 없는 멋진 놀이터가 '방화수류정'. 소년들이 '연못가'(용연)에서 '서로 용잠자리 잡아주기 위해' 애쓰던 장면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런데 '용잠자리 보배/꽈리 보배'를 외치며 잠자리를 잡아주려던 '난이'는 누구일까. 분명 첫사랑 소녀려니, 행간에 흑백사진 같은 영상이 스친다.
 
스무 해 뒤, 시인은 모든 사물이 빗장이라도 건 듯 달라진 연무동을 본다. 결국 '뿌연 시야를 손등으로 비벼대며/조용히' 걸어 나온 곳. 누구에게나 '변성기'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리운 곳이 있다. 비록 눈물을 훔치며 되짚어오더라도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생의 골목. 그런 그립고 시린 고샅들이 있어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와 일상을 살아내는 것 아닐까.
 
선경도서관에서 절판시집을 빌려오다 카페에 들어 시적 취기 넘치는 시편에 취했다. 혼자 맥주를 마시며 '끼니를 거르고 잠들'기도 했지만 훗날 시는 거르지 않았을 시인을 기렸다. 어쩌면 영산물로 기른 시가 '마취 당하지 않는/유년의 파아란/힘줄 하나로'('색맹을 위하여') 남아 풍진 세상을 살아가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석수 시인의 '연무동사신(私信)'_3
박석수 시인의 '연무동사신(私信)'_3

수원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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