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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천 시인의 '수원화성'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4-29 10:47:19최종 업데이트 : 2016-04-29 10:47:19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수천 시인의 '수원화성'_2
윤수천 시인의 '수원화성'_2

華城
은 누가 뭐래도 꽃성이다. '조선 성곽예술의 꽃'! 오래된 찬사지만, 화성을 돌면 돌수록 이 말에 동의하게 된다. 화성을 알고 보면 볼수록 그 철학과 정신과 미적 실현에 절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수원시민들이 화성에서 만나면 서로 흐뭇이 뿌듯이 웃을 밖에.

그럴 때 '아는 만큼 보인다'도 실감하며 재확인한다. 문화유산만 아니라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서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보이는 것은 곧 보는 것! 보는 행위를 능동적으로 말하면 주체의 시선이 더 부각되니 '아는 만큼 본다'로 쓴다. '보이는'보다 주체적인 '보는'에 방점을 찍어보는 것이다.

이 시는 화성을 들어 올리는 맑고 푸른 상상을 즐겁게 울려 퍼지게 한다. 성이 '밤마다 꿈을' 꾼다는 발상은 동화적 환상을 일깨우며 돌성인 화성에 색다른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먼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푸른 새'라는 환상, 이 신나는 상상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란다' 같은 말투를 통해 더 친근하게 전해진다. '돌로 된 성이 아니'고 화성이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푸른 새'라는 시적 전언에 절로 미소 지으며 끄덕이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 시를 쓴 윤수천(1942~) 아동문학가는 동화(1974년 소년중앙문학상)와 동시(1976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이후 시집 2권에 70여 권의 동화를 펴낸 지동의 '동화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원 지동에서만 40년 이상 살아올 동안 교과서에 동시와 동화가 실린 것은 물론 창작에 비례하는 인세며 강의도 꾸준한 현역 노익장이다. 오래 전부터 알아온 지역의 문인들과 변함없이 어울리며 지동 골목을 한결같이 걸어 다니는 분으로도 유명하다.

작가는 힘들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더 돌아보는 따뜻한 동화세계를 견지하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험하고 어려운데 동화가 어떻게 힘을 줄 수 있을까. 우문에 현답을 주듯, 동화 속 아이들은 어려움도 씩씩하게 이겨내고 서로 아끼며 나름의 꿈을 키워간다. 그러는 동안 지동 골목들과 꽃과 나무들 그리고 화성 성돌들도 조금은 기여했다던가. 물론 작가의 눈빛과 발소리가 그 모두를 키우기도 했을 테니 지동의 바람도 햇볕도 기꺼이 제 몫을 얹었으리라.

수원화성이 본이름을 되찾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가 '화성''수원성'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한동안 '수원성'을 써왔던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수원화성'으로 등재되기 전까지는 책에서나 대화에서나 예사이던 '수원성'은 이제 모두 '수원화성'으로 바꿨다. 그런 사정을 돌아보며 시를 읽자니 본이름 찾기에 앞섰던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과 심재덕 전 수원시장의 큰 노력에 새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밤이면 '푸른 새'로 변신하는 꽃성! 돌로 쌓은 묵직한 화성이 세월의 무늬를 온몸에 두른 채 날아오르는 상상은 즐거운 그림이다. 하지만 '꿈과 희망과 행복을 품은/울음소리도 힘찬 새'와 오래 함께 살려면 우리가 화성을 더 세심히 살펴야겠다. 그렇게 축성 정신과 가치를 더 깊이 새겨 나날의 삶 속에 담아낼 때 화성도 더 멋지게 '푸른' 날개를 펴리라.

윤수천 시인의 '수원화성'_3
윤수천 시인의 '수원화성'_3

수원의 시 , 시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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