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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제 시인의 '노을속에 잠기다'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5-19 16:16:07최종 업데이트 : 2016-05-19 16:16:07 작성자 :   e수원뉴스
배용제 시인의 '노을속에 잠기다'_2
배용제 시인의 '노을속에 잠기다'_2


 
파장동은 이름의 피해가 있었을 법한 동네다. 실은 '파장동(芭長洞)'이니 파초를 뜻하는 아름다운 이름, 화성 축성 직후에는 '파동(琶洞)'이었다. 그런 이름의 유래와 상관없이 '파장(罷場)'을 연상시키는 말장난을 더러 했던 것이니 주민들은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용제(1968~) 시인은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했을 때 수원에서 살고 있었다. 등단 후 시적 성취를 인정받으며 죽음에 대한 탐색에서 특히 남다른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주대 앞에서 무슨 카페를 한 시절도 있어서 문인협회에 들지 않은 소수의 시인들과 오붓한 모임을 즐기곤 했다.
 
파장동에서도 한동안 살았다는데 시에는 그때의 시간이 깊숙이 배어 있다. 그런데 그 경험이 지명과 어울리며 묘한 의미의 파장을 이루고 있다. '파장동 횡단보도에 서 있는 저물녘'이라는 도입부터 파장(罷場)과 연상되는 '일몰(日沒)'을 떠올리게 하고 '''빠지다, 빠져 잠기다'를 환기하는 것이다. 물론 제목도 '노을 속에 잠기다'니 이런 일련의 이미지를 긴밀히 연결해놓은 장치로 짐작된다.
 
노을에 잠겨 '나는/유린당한 착란의 풍경'일지도 모른다고 뇌는 사람. '불이 꺼진 유리창 속에서만 어른거'리는 존재로 보면 착란의 하나일 수 있겠다. 누구나 횡단보도 앞에서 거대한 유리를 마주하고 있으면 되비추는 자신의 모습에서 생소한 모습이나 내면을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의 장면에서 시인은 '나는 어쩌면 유리창에 낀 먼지의 얼룩'이라는 또 다른 '착란'을 불러온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조합되는 자신의 모습과 주변 풍경을 비추는 점에서 유리창은 '이면지'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횡단보도 앞의 잠깐은 '잠을 잘 때만 부스럭거리며 내 정체를 드러냈었지'라고 새삼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건너편 유리창으로 보이는 여러 모습이 새로운 성찰로 촉발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도시는 모래의 유적'이라거나 자신을 '불붙은 모래 먼지의 착란'으로 보는 것은 그래서 가능한 발견이리라. 굳건한 시멘트벽도 실은 모래가 재료이니 모래 없는 유적이란 없지 않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속성과 반대로 건축에서 유적으로 남는 특성의 통찰을 '빠지다' '잠기다'의 노을로 다시 삶의 노을을 일깨운다.
 
파장동뿐이랴. 어느 횡단보도에서나 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잠깐이 일생처럼 아니 영원처럼 길거나 환상의 어느 한때로 느껴지거나 평소와 전혀 다른 시간의 감각. 시간의 상대적 길이감이 파장동의 노을 속에서 색다른 사색으로 펼쳐진다. 근처의 지방행정연수원 덕에 흥성했던 파장동, 이제는 '아 옛날이여~' 되뇌는 상황이라 시 속의 노을이 더 깊이 와 닿는지도 모른다(연수원이 전주로 옮김).
 
파장동에서 비에 젖은 파초나 보면 좋겠는데그런 이름의 그윽한 정취는 언제나 가능해질지 모르겠다. 파초가 풍격 높은 그늘을 드리우는 파장동으로 놀러가고 싶어진다.

배용제 시인의 '노을속에 잠기다'_3
배용제 시인의 '노을속에 잠기다'_3

수원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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