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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성 시인의 '은사시나무'
詩해설 - 정수자시인
2016-06-04 11:53:40최종 업데이트 : 2016-06-04 11:53:40 작성자 :   e수원뉴스
조길성 시인의 '은사시나무'_2
조길성 시인의 '은사시나무'_2


은사시나무는 수원이 있어 태어난 나무다. 유럽이 원산지인 은백양 암나무에다 수원 여기산 부근에서만 자생하는 수원사시나무 수나무를 인공 교배하여 탄생시킨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에 등재된 나무는 아빠 '수원사시나무'에서 '수원'을 빼고, 엄마의 ''을 붙여 '은사시나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학명에도 두 수종의 교배임을 알도록 'Populus alba x glandulosa'로 표기했다.
 
'은사시나무'는 이름도 예쁘다. 한때는 이 나무를 탄생시킨 임목육종학자 현신규의 성을 따서 '현사시나무'로 부른 적도 있었다. '은사시'는 은빛이 주는 묘한 신비감에 이름값이 더 올라가는 것 같다. 게다가 수원사시나무의 교배로 세상에 나왔으니 수원으로서는 더 친근한 느낌이 드니 부를수록 이름도 정겨워지며 나무 곁으로 다가가는 것만 같았다.
 
이 은사시나무에 울음을 얹은 조길성(1961~) 시인은 2006'창작21'로 등단했다. 등단 전 수원에 와서 살 때 시인 주변의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서문막걸리'라는 아담한 주점을 꾸린 적도 있다. 독립유공자 조부를 둔 까닭에 할머니와 둘이 자란 외로움이 시에 많이 보이는데 사회적 울분을 고단한 삶에 간간이 담아내기도 했다. 조금 따뜻했을 수원에서의 한동안 후 독거로 다시 돌아가더니 시와 함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은사시나무에서 시인이 본 울음은 무엇보다 '공명이다'. 또한 '목숨 가진 것들의 허파에 들어있는 생명의 탄력이다'. 나아가 '소리의 사다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은유와 연상은 은사시나무 잎사귀의 흔들림과 큰 키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은빛이 지닌 신비감과 어우러지면서 그 모든 것들이 '은사시나무를 어루만'지듯 돌올하게 비춘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그 모든 게 '희미한 울음의 기억을 눈뜨게 한다'고 본다.
 
시인도 은사시나무 아래서 한참 울어본 날이 있었던가. '쓸개마저 딸려 올라간 저 하늘 밤빛'을 읽는 눈이라면 자신도 그런 심정으로 밤을 보냈으리라. 그렇게 은사시나무도 저 혼자 희게 빛나니 거기 매료된 시인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더 길게 울었을 듯. 이때 은사시의 흰 빛이 백야(白夜)의 나날처럼 밤을 온전히 헤매는 이미지와 겹치는 것은 시인의 떠돎 같은 분위기 때문일까. 하고 보니 정처 없음이야말로 시의 오랜 양식이 아닌가.
 
어디서 은사시나무를 봤지? 돌아보면 기억이 희미하다. 필요가 준 속성수에다 목재 가치도 떨어지니 꺼리는 수종이 된 것이다. 씨앗의 깃털인 하얀 솜털을 알레르기의 원인인 꽃가루로 오해한 탓도 있다. 그런 사정으로 지금은 예전에 심어놓은 산자락 구석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라니, 나무도 유행에 따라 생존이 좌우된다. 필요만 아니라 취향이 적자생존에 반영되는 것이다.
 
은사시나무의 운명을 시에 곁들여 읽다 여기산을 다시 본다. 수원이 있어 탄생한 은사시나무가 그새 사라지다니아쉬운 마음에 여기산 어딘가를 한번 찾아 거닐어보자고 혼자 끄덕인다. 백로가 유독 많이 찾아 산자락이 하얗게 빛나던 여기산, 지금쯤 푸른 기운을 더 싱싱 내뿜고 있겠지.

조길성 시인의 '은사시나무'_3
조길성 시인의 '은사시나무'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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