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박설희 시인의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
詩해설 - 정수자시인
2016-06-08 15:33:02최종 업데이트 : 2016-06-08 15:33:02 작성자 :   e수원뉴스
박설희 시인의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_2
박설희 시인의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_2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북문. 축성 후 정조가 수원 행차를 할 때마다 먼저 거친 문이다. 장안문에 들면 비로소 화성 안에 들어선 기분이 정조로서는 더 남달랐을 것이다. 그런 통과 의미만 아니라 예부터 북쪽에는 임금을 향하는 방향이라는 함의도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저런 의미를 지우고 봐도 장안문은 위풍당당하다. 양 옆에 거느린 적대 덕이 크지만, 한국전쟁의 처참한 파괴를 딛고 중건한 문으로서도 위용이 달리 느껴진다. '북문은 부서진 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시간을 건너온 성장이랄까. 수원사람들이 장안문 아닌 북문으로 부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은 많은 시민과 외부 관광객의 찬탄 속에 화성 북문의 위용을 드높인다는 중이라 듬직하기 짝이 없다.
 
장안문에서 삶의 단면을 잡아낸 박설희(1964~) 시인은 수원화성에 매료돼 여기 정착한 강원도 속초 생이다. 이십 년이 넘도록 수원에 살면서 시인은 수원의 곳곳을 누비며 '지금, 이곳'에 대한 글쓰기를 활발히 하고 있다. 삶에 깊이 밀착된 시세계의 단단한 구축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 기획과 참여, 강의 같은 나눔의 일에도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한다.
 
2003년 실천문학 등단작(신인상)인 시에는 삶의 이면(裏面)이 다양하게 중첩되어 있다. '통유리 창문과 장안문 사이에' 낀 듯 보이는 '백반 쟁반을 머리에 인 아주머니'의 모습. 바쁘고 고단한 삶의 이 단면에 겹치는 게 또 있으니 '장안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몸통'이고 '자동차'들이고 '허리 잘린 빌딩들'이다. 그 모두가 마치 쟁반에 담긴 듯 착시를 일으키는 것은 '통유리'를 통해 보기 때문이고, 시인이 그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해 다시 배치하기 때문이다.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듯 묘하게 뒤섞인 삶의 면면들. 그것들이 담긴 한 장의 유리를 한동안 바라보자니 그 모두가 '한 끼의 밥, 한 끼의 식사처럼 어디론가 실려' 간다. 바쁜 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이 그렇게 유리를 통해 잠시 기록되고 스쳐가듯 시인의 눈을 통해 소묘되고 그러는 동안에도 삶은 흘러간다. '젓가락 숟가락과 더불어 달그락거리며/밀려나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면서/흐르듯, 깨소금과 온갖 양념에 범벅이 된 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끝없이 박음질된 차선이 달려가고 있'는 풍경도 보인다. 차선은 그냥 거기 있건만 흐르는 시선으로 들어온 차선 역시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보니 우리네 삶도 똑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듯 이 시에는 현대인의 파편화된 모습 같은 투영 속에도 하루하루를 '머리에 이고' 힘겹게 나아가는 삶의 단면들을 담고 있다. 그런 조각들의 모음으로 완성하는 한순간의 모자이크화랄까.
 
지금은 장안문 주변이 시 속의 풍경과 많이 다르다. 통행을 줄이는 게 문의 보전에 좋으므로 로터리를 이루던 양쪽 길 중 한쪽을 막아버린 것이다. 사람의 통행보다 문화유산 보전이 중해진 인식에 따른 선택이다. 불편하더라도 성안을 생태마을로 살리려면 차 없는 거리를 만들 장기대책과 실천이 긴요해진 것. 그렇게 성안을 가꿔간다면 화성과 함께 인인화락(人人和樂)할 수 있으리라.

박설희 시인의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_3
박설희 시인의 '장안문을 머리에 이고'_3

수원의 시, 시해설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