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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의 '비에 젖다'
詩해설 - 정수자시인
2016-07-07 13:27:46최종 업데이트 : 2016-07-07 13:27:46 작성자 :   e수원뉴스
김왕노 시인의 '비에 젖다'_2
김왕노 시인의 '비에 젖다'_2


장마에 들면 도처가 젖는 것뿐이어서 여기저기 젖는 얘기로 또 젖게 마련이다. 몇날 며칠 젖다 보면 쨍한 햇빛이 간절한데 오락가락 먹구름이 습도만 높일 뿐. 그럴 때 도처가 세균이며 벌레들이 궁시렁거리는 듯해 마음 바닥도 더 꾸물거린다. 물론 큰 피해 없이 장마가 조용히 지나가길 빌지만.
 
이 시를 쓴 김왕노(1957~)는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수원의 시인이다.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4권의 시집을 냈고 계간문예지 편집주간을 하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포항의 파도소리를 듣고 자란 어린 시절을 거쳐 수원에 정착한 후 소설에서 시로 문학의 행로를 바꿨다는데 지금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최적화하는 중이다. 축구 좀 하는 시인들 모임인 '글발'을 이끌며 공도 시도 뜨겁게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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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주공 2단지 2111503호로 들어올려진' . 거기 살고 있는 시인의 '가족사'가 비에 젖는다는 시에는 삶의 한 과정에 대한 진솔한 서술이다. 젖는 것의 목록으로 아들이 읽은 책제목을 굳이 나열하는 것은 '주공아파트' 주민으로 표상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독서 중시하는 부모 만났다면 대부분 읽었을 책들이 젖고 있는 모습은 '가족사'의 단란한 한때도 환기한다. 그렇듯 '비에 젖'는 상황이 아파트 칸칸마다 담겨 있는 평범한 가정들의 삶이자 일상을 더 깊이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젖어서 춥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젖으면 당연히 춥고, 심지어는 한여름에도 젖으면 춥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게다가 젖는다는 표현에는 뭔가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하는 듯한 함의도 담긴다. 그러니 삶의 기나긴 길에 닥치는 젖는 순간의 형상화로 그렇게 젖으며 또 젖은 것들을 말리며 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가족사'가 젖는 상황으로 가장 아팠던 한때를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입장에서 진술하는 대목은 그런 암시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긴 살을 가진 넓은 우산도 아니고/세상 속으로 삐죽 내민 처마도 아니고/젖은 몸 말려주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도 아니고'라니, 화자의 독백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의 삶을 환기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아버지는 '춥다'고 되뇔 수밖에 없겠다. 하긴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닥치는 세상의 비를 다 가려줄 수 있으랴. 누구나 제 몫만큼의 비를 맞고 가는 게 주어진 삶의 여정 아닌가.
 
장마에는 대책 없이 젖다 상하는 꽃이며 풀이며 채소들이 많다. 뭉그러지는 채소와 물크러지는 과일 들로 우리 마음도 더 젖는다. 하지만 젖을수록 감성의 촉이 더 촉촉해지는 시인들은 젖음을 향해 더 깊이 젖으러 나서기도 한다. 장쾌하게 비 쏟아지는 날, 원천에 가면 시인과 진한 대작을 할 수도 있지 싶다. 포항 사투리에 입담도 퍽은 걸쭉한 상남자 김왕노 시인의 거처께는 그럴 것만 같으니, 시의 탓만은 아니다. 도처가 비와 긴 대작을 하듯 원천의 물도 길게 붇고 있으리.

김왕노 시인의 '비에 젖다'_3
김왕노 시인의 '비에 젖다'_3

시해설, 수원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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