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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시인 '냇물'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1-26 14:07:20최종 업데이트 : 2016-01-26 14:07:20 작성자 :   e수원뉴스

나혜석 시인 '냇물'_2
나혜석 시인 '냇물'_2


'냇물' 앞에서 갸웃대는 이가 많을까. 잘 아는 수원의 시라고 반기는 이가 많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로 나혜석(1896~1948)을 기억해왔다면, 이 시를 새겨 읽을 만하다. 그리고 페미니즘 전사 같은 논설과 시와 소설을 쓴 나혜석의 시에 나오는 수원의 풍광도 다시 즐길 만하다.
 
얼핏 보면 '냇물' 은 수원의 시인지 의심할 만큼 보편적 냇물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인 냇물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관찰하고 그려내는 감상에다 물의 속성을 곁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만날 법한 냇물 시에서 우리 눈길을 잡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華虹門 樓上에서'라는 부기(附記)다. 이 장소의 명시로 시 속의 냇물이 다름 아닌 수원천임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화홍문 누상', 이 부연이 없었다면 시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그만큼 시 속의 장소 표시는 그곳을 아는 사람들에게 시적 의미나 효과를 더 풍성하게 해준다. 여기서 나혜석 고향의 냇물인 수원천 추억과 그녀가 의탁하는 심경을 짐작해보며 고향 의식까지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혜석은 화령전과 서호 항미정의 노을 등 수원의 절경을 그리면서 그런 명소에 대한 자긍을 수필로 쓰는 등 수원 사람으로서의 장소애(場所愛)를 잘 보여준다. 

시의 말미에 굳이 밝힌 화홍문은 '조선 성곽예술의 꽃'인 화성에서도 '제1경'의 명소. 광교에서 내려오는 수원의 물을 점검해 보내듯 서 있는 수문으로서도 더없이 수려하지만 방화수류정과 용연까지 거느린 풍광에 흥취가 절로 나는 곳이다. 거기서 냇물을 바라보며 천변만화를 헤아린 시이니 고향을 찾은 나혜석의 내면이 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소나 날씨나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냇물의 변모가 곧 세속의 은유로 읽히는 연유다. 
 
시는 한국현대시 초기처럼 단순한 편이다. 흔한 냇물의 빛깔과 속성을 보고 느낀 대로 그려낸 때문이다. 하지만 물빛의 변화나 모양의 다양한 묘사를 즐기다 '맑던 물 파래지고/퍼렇던 물 짜지고'에 이르면 뭔가 더 짚이는 게 있다. 바다에 도달해 '짜지'는 것은 냇물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건만 나혜석의 심경과 세상사를 겹쳐 읽게 되는 것이다. 그즈음 나혜석의 전부였던 애인 최승구(시인, 1892~1917)의 죽음 후 큰 실의에 빠져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 아픔과 외로움 같은 게 더 깊이 느껴진다. 

돌아보면 물은 우리의 시원이고 생명이고 귀의처다. 양수, 식수, 농공업용수 등 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생명 가진 자들의 운명이다. 그런 물이 깨달음의 묘처이자 성소이기도 하니 '상선약수(上善若水)'로 물의 덕성을 갈파한 노자나,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나, 갠지스라는 성스러운 강물에 씻고 시체도 보내는 인도인들을 보면 물의 힘에 절로 숙여진다. 그런 물의 속성을 새겨보듯, 나혜석은 고향의 냇물을 성찰의 거울인 양 계속 들여다본 것이다.
 
화홍문 냇물을 하염없이 바라본 수원의 처자 나혜석. 그녀는 이후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라는 명성 속에서 최초의 세계여행을 하는 등 '최초'로 표현되는 많은 것을 누린다. 하지만 가부장사회에 대한 도전과 발언으로 세상과 맞서며 각성한 여자로서의 고된 삶도 제 몫이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으니 이혼 후 정착하려던 수원에서의 그림 의욕도 앗긴 말년에는 수덕사 등을 전전하다 행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봐도 선각적인 주장과 행동과 페미니즘의 실천 같은 삶은 많은 것을 일깨운다. 그런 만큼 나혜석에 대한 재평가와 조명도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1995년부터 연 <나혜석 미술대전>, 1999년 시작한 <정월 나혜석기념사업회>에 이어 최근에는 <나혜석학회>까지 만들어 연구의 심화․확대를 꾀하는 중이다. 수원의 예술가로 가장 많은 예술적․학문적 조명을 받는 셈인데, 나혜석이란 인물의 위상과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화홍문에 올라 나혜석을 그린다. 너무나 뜨거웠던 말과 행동 그리고 예술을 돌아본다. 고독했지만 그녀의 선각이 있었기에 또 다른 나혜석들이 나오고 더 좋은 세상도 만들어 가리라. 그것이 홀로 품고 간 그녀의 유지(遺志)를 실현하는 길 아닐까.

나혜석 시인 '냇물'_3
나혜석 시인 '냇물'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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