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임병호 시인 '봄이 오면'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2-25 21:12:17최종 업데이트 : 2016-02-25 21:12:17 작성자 :   e수원뉴스

임병호 시인 '봄이 오면'_2
임병호 시인 '봄이 오면'_2


겨울의 결박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 칙칙하던 세상의 빛깔을 확 바꿔내는 봄의 마술사다. 연둣빛 여린 발돋움들이 곧 밝고 눈부신 생동을 만천하에 퍼뜨릴 것이다. 도타와진 햇살과 부드러워진 바람을 타고 빚어내는 새로운 빛과 향과 노래가 도처를 마구 약동시킬 것이다. 

그 사이로 속살대는 봄비에 더 설레는 이가 있다. 우산 없이 기꺼이 나선다면 무엇에든 홀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봄 귀띔에 지레 취하는 것쯤 다반사겠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꽃이 피고 져도, 하다못해 바람만 수상하게 불어도, 그 모두를 '꺼리' 삼아 대책 없이 흔들리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주요 직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 중에도 임병호(1947~)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원의 낭만주의자요, 행복주의자다. 무엇보다 둘째라면 서러울 만큼 뜨거운 수원 사랑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수원에 대한 시가 아주 많다는 것도 그 증좌겠다. 그리고 지금도 수원 사랑을 여일하게 시로 펼쳐내며 알리고 있으니 어찌 수원의 봄을 속속들이 찾고 맛보고 감탄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유정한 이와" 헤매고 싶은 하릴없이 유정한 봄날이 새록새록 열리는 중인데….
 
때는 '바야흐로 연초록에 젖어 가는 세상 천지' 앞! 아직은 연둣빛 몸을 뽑아내려고 고물고물 애쓰는 '경칩' 즈음이지만, 시인과 함께 나서면 누구보다 먼저 봄맞이를 할 것만 같다. 봄빛 감도는 바람과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수원 곳곳을 걷다 보면 시인처럼 무구한 행복에 빠질 것도 같다. 그렇게 눈을 비비며 다시 보고 느끼고 만나는 새 움 앞에 선다면 '봄이 오면 눈이 밝아지는가'라고 따라 외치게 되리라. 아니 새로운 연둣빛을 많이 만날 테니 실제로 눈이 밝아지기도 하리라. 

그런데 봄 햇살을 한껏 누렸을 '연무동 150번지의 풀잎들'. 지금은 '陰二月 細雨에/얼굴 씻고 머리를 매만지는' 싱그러운 풀잎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연무동'에서 '봉녕사'로의 길도 시인이 거닐 당시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책하기 좋던 시 속의 연무동 들판이 없어지면서 예전에 꽤 높던 뒷고개도 번잡한 길로 변했고, 그 너머 논밭들 역시 광교라는 새로운 삶터가 되었다. 다만 날로 울울해지는 시멘트숲 속에 청정구역으로 남아 있는 봉녕사, 그곳의 정적을 다행으로 여길 밖에 없다. 

그래서 더 숙여들기 좋은 게 봉녕사 가는 길이다. 봉녕사는 고려시대 고승 원각국사의 창건 당시엔 성창사였는데, 조선시대 혜각국사의 중수 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어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간의 불사는 영산회상도, 칠성탱화, 현왕탱화 조성, 약사여래 후불탱화 등이 잘 보여준다. 대웅전 신축 후 세운 승가대학도 유명하다지만, 봉녕의 그늘을 설법처럼 넓히는 8백 살이나 된 앞마당의 향나무가 더없이 좋다. 

아무려나 마음먹고 나서야 만날 수원의 풍경이다. 그런 길에서는 '아, 봄이 오면 귀가 밝아지는가'라고 시인처럼 자신을 밝힐 수도 있겠다. '유정한 이'가 없더라도 봉녕사 뒷산의 '푸른 함성'이며 '유정한 풍경'과는 대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봄빛에 미리 취한 시인의 눈빛을 만날지도 모른다. '흙이 살찌는 들녘' 찾아 거닌 시인의 행보를 알 만한 이는 알 터인즉, '동남간 꽃바람이 흐르는데' 어찌 더불어 취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게 나아가 맞으면 봄의 정령들도 겨울의 추운 시간을 위무할 것이다. 새로운 생으로 나아가는 힘도 푸르게 실어줄 것이다. 몇 차례 치고 갈 꽃샘이 기다리는 아직은 이른 봄이지만 빨리 꽃봄을 맞고 싶은 날. '봄이 오면' 시의 팔을 끼고 수원의 봄 산책에 나선다. 어디선가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봄'을 만끽하는 희끗해진 시인을 만나려니….  

임병호 시인 '봄이 오면'_3
임병호 시인 '봄이 오면'_3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