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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양 시인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3-11 14:40:13최종 업데이트 : 2016-03-11 14:40:13 작성자 :   e수원뉴스
박팔양 시인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_2
박팔양 시인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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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 진달래! 눈 속에 피어 사랑받은 매화도 있다. 하지만 진달래가 산을 붉게 적셔야 봄이 활짝 열리니, 게다가 배고프면 따먹기도 했으니, 진달래야말로 참 봄꽃이다.
 
그런 진달래에 일찍이 열광한 시인이 있었으니, 수원군 안룡면 곡반정리 출신의 여수(麗水) 박팔양(1905~1988)이다. 최초의 사화집 '폐허의 염군'(1923)을 내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 박팔양은 감상적 낭만주의 풍과 모던한 도시적 감수성을 오가며 시의 미적 자율성에도 관심이 컸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라는 엄혹한 상황은 그를 현실주의적 사회주의 쪽으로 더 기울게 했다.
 
위 시는 선구자의 넋으로 진달래를 부르는 흥취 속에 진취적 기운마저 부르르 일으킨다. 무엇보다 '진달래'에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대조적인 남성적 어조며 정조가 독자의 가슴을 뜨겁게 흔든다. 과잉도 개의치 않는 감상과 열정으로 외치는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는 전언이 시적 감흥을 높이는 것이다.
수원 출신이니 수원 시편을 더 찾아본다. 그런데 '고향'만 여러 번 등장할 뿐, 수원의 지명은 안 나타난다(현재는 전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없음). 다만 산문 '여름철과 나의 추억'에 박팔양이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바라보며 걸었을 법한 고향의 모습이 정겹게 나온다.
 
'내 고향은 서울서 쪽으로 얼마 멀지 아니한 ××인데 그 에서도 길로 約十里가량을 드러간다. 드러갈 때에는 길이지만은 드러가기만 노흐면 洞里는 압히훤하게 턱 터진 넓은 들로 하고 잇다. 뒤에는 언덕, 압헤는 들, 그 가운데 내가 살든 이 잇는데 그 압들에는 맑은 내()가 길게 흘러잇다.'(신민 제16, 1926. 7)
 
들판이 넓어 '곡반정'으로 불려온 곳. 바로 '비닭이집 비닭이장같이 오붓하던 내 동리'('밤차'). '닭장'같이 가난해도 '오붓하던 내 동리'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당시 조선의 헐벗은 농촌을 껴안고 나가는 마음이었다. 그런 고향에는 그가 자랐다는 백부 집만 남아 있어 수원의 문화적 자산으로 매입보전하자는 의견이 오가는 중이다.
 
진달래 같은 선구자들이 꿈꾼 새 세상은 어디 갔는가. 꿈을 묻는 것조차 싫다는 세상이 됐지만, 이런 시를 보면 꿈을 버리는 게 삶의 직무유기 아닐까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달래는 피어나고 더 나은 세상을 부르는 시가 있어 그나마 위로를 삼지만.

박팔양 시인 '너무도 슬픈 사실 -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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