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사 탑에 불기 2987년이 의미하는 것은
불기 2562년과는 다른 북방불기가 있었다
2018-05-23 16:28:16최종 업데이트 : 2018-05-24 10:21:0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
얼마 전에 용주사에 다녀왔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길양사로 창건됐는데 병자호란 때 소실돼 폐사됐다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대왕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꿔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홍살문이 보인다. 사찰에 홍살문이 있는 것은 용주사가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능침사찰이기 때문이다. 홍살문을 지나 삼문으로 들어가기 전 왼쪽에 비석이 하나 보이는데 대련선사부도비(大蓮大禪師浮屠碑)다. 용주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용주사와 관련해 주요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1911년 용주사의 주지로 부임한 강대련(姜大蓮, 1875~1942)스님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친일 행각으로 용주사 뿐 아니라 한국 근세 불교사에 큰 오점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용주사에 있는 대련선사부도비, 부도비 뒤에는 단군 4277년, 세존탄강 2971년 갑신(甲申)에 세웠다고 표기하고 있다. 강대련 스님의 부도비는 놀랍게도 위창 오세창(1864-1953)이 비석 전면에 대련선사부도비(大蓮大禪師浮屠碑) 전서 글씨를 썼고 비문은 성재 김태석(1874-1951)이 썼다. 부도비 뒤에는 단군 4277년, 세존탄강 2971년 갑신(甲申)에 세웠다고 표기하고 있다. 이는 서기 1944년이다. 세존탄강 2971년이 무엇일까.
수원에 있는 봉녕사 경내로 들어가 범종루를 지나 대적광전 가는 길 좌우에 탑이 있다. 오른쪽에는 복제한 다보탑이 서있고 왼쪽 탑 탑신에 반야심경이 새겨져 있다. 불기 2987년 경자(庚子) 9월 9일 운수객 청담이라 쓰여 있다. 이는 서기 1960년이다. 불기 2987년이 무엇일까. 봉녕사 경내에 있는 탑, 탑신에 반야심경이 새겨져있다. 불기 2987년 경자(庚子) 9월 9일 운수객 청담이라 쓰여 있다. 봉녕사 경내에 있는 탑, 탑신에 반야심경이 새겨져있다. 불기 2987년 경자(庚子) 9월 9일 운수객 청담이라 쓰여 있다. 봉녕사 내 세주묘엄박물관 전시자료에는 응화(應化) 2976년 기축(己丑) 5월 12일이라 쓰여 있다. 이는 서기 1949년이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불기(佛紀) 2562년이다.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불기와 너무 많은 차이가 있어 그 원인을 찾아봤다.
세존탄강, 응화, 불기가 모두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인데 현대불교신문 기사를 보고 의문이 풀렸다. 올해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이 부처님 탄생일로 알고 있지만 불기(佛紀)는 불멸기원(佛滅紀元)의 줄임말로 부처님이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라 한다. 부처님의 탄생이나 열반 연도가 정확하게 기록돼있지 않아 나라마다 불기가 달랐다고 한다. 스리랑카는 BC543년, 태국과 미얀마는 BC544년 등이었다. 1956년 WFB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부처님 입멸 2500년을 기념해 남방불기 기준 중 태국과 미얀마의 BC544년을 공식 불기로 채택한 것이다. 그래서 올해 불기는 서기 2018년 + 544년 = 2562년이 되는 것이다. 봉녕사 내 세주묘엄박물관 전시자료에는 응화(應化) 2976년 기축(己丑) 5월 12일이라 쓰여 있다. 북방불기라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중국 등에서는 공식적인 불기보다 연대가 앞선 기원전 10세기를 부처님 열반 연도로 봤기 때문에 북방불기는 남방불기보다 483년이 앞선다. 불교건축물이나 기록에 북방불기가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66년 조계종이 WFB불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해 이후에는 우리나라도 남방불기를 사용하고 있다. 올해 북방불기는 서기 2018년 + 남방불기 544년 + 북방불기 483년 = 3045년이 된다.
불교는 크게 대승불교(大乘佛敎), 소승불교(小乘佛敎)로 구분하는데 대승불교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인도 아쇼카왕 이후 인도 북방에서 일어났다. 승려들만의 불교로 머물러 있던 불교를 민중에게까지 보급하기위해 출가하지 않고 수행하는 신도를 포함하고자 시작됐다. 석가모니에게만 한정하던 보살의 개념이 확장돼 모든 중생들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며 자기만의 해탈보다는 이타주의로 넓어진 것이다.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 봉녕사, 인파로 가득한 봉녕사 대승불교는 중국, 몽골, 티베트,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수용했고 북방불교(北方佛敎)라 부르기도 한다. 이에 반해 소승불교는 수행자 자신만의 엄격한 수행으로 개인 해탈을 강조한다. 소승불교는 남인도,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수용했고 남방불교(南方佛敎)라 부르기도 한다.
북방불기, 남방불기, 봉녕사, 용주사, 한정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