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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강진청자축제 가 보니
흙, 불, 사람…뜨거운 여름날 활짝 펼쳐진 천년 비색(翡色)의 꿈
2017-09-10 08:01:02최종 업데이트 : 2017-09-10 08:01:02 작성자 :   연합뉴스
[사진/임귀주 기자]

[사진/임귀주 기자]

[연합이매진] 강진청자축제 가 보니
흙, 불, 사람…뜨거운 여름날 활짝 펼쳐진 천년 비색(翡色)의 꿈

(강진=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신비로운 빛깔과 우아한 무늬, 그리고 부드러운 형태. 전남 강진은 고려시대 500년 동안 청자문화를 꽃피운 본산지였다. 이곳에서 여름마다 뜨거운 열기 속에 개최되는 청자축제는 그 전통과 멋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올해 축제도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체험케 함은 물론 기승을 부리는 복더위까지 훌훌 날려주었다.



땡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폭염의 한낮. 축제장의 서문에 들어서자 커다란 넝쿨터널이 먼저 방문객을 반갑게 맞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고만고만한 조롱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건듯 부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어서 오시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청자의 잔치마당이어서 더 그럴까? 둥근 선, 고운 모양, 푸른 색깔이 고려청자와 얼추 닮았다 싶었다. 자연스러운 연상작용! 조롱박이 하늘의 햇빛을 받아 성숙한 뒤 요긴한 그릇으로 사용되듯이, 청자는 땅의 불꽃에 달궈져 고매한 도자기로 재탄생하지 않는가.





◇ '화목 불 지피기'로 개막

해마다 여름이면 한반도 끝자락의 강진 땅에서는 국내 유일의 청자축제가 열려 관광객들을 두루 불러 모은다. 잘 알려진 바처럼 강진은 역사적으로 한국 최고, 최대의 청자 고장이었다. 통일신라 말엽에 들어온 중국의 청자는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독창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흙·불 그리고 사람'을 주제로 한 제45회 강진청자축제는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전남 강진군 대구면의 고려청자요지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져 청자문화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껴보게 했다. 나아가 '물불 가리지 않는 시원함을'이라는 슬로건처럼 다양한 여름철 프로그램들로 복더위 또한 말끔히 털어내게 해줬다.
축제 개막 첫날인 7월 29일 오후 한옥청자판매장 앞의 화목(火木)가마. 고려시대 도공들이 도자기를 굽던 전통가마가 옛 방식 그대로 재현된 이곳에서는 강진군수를 비롯한 내외 인사들과 관광객이 참가한 가운데 불 지피기 행사가 장엄하게 진행됐다. 개막의식이 따로 없는 청자축제에서 화목가마 불 지피기는 축제의 본격 시작을 알리는 사실상의 첫 프로그램이었다.
"하나! 둘! 셋! 불을 붙여주십시오!"
사회자가 힘차게 외치자 참가자들은 각기 손에 든 점화봉을 소나무 장작이 차곡차곡 쌓인 가마 속으로 일제히 던져 넣었다. 순식간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가마! 참가자들이 신기하다는 듯 크게 뜬 눈으로 황금불꽃의 가마를 바라보는 가운데 뒤편의 굴뚝에서는 하얀 장작 연기가 모락모락 힘차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가족과 함께 축제 구경을 왔다는 정은희(42·장흥) 씨는 "전통의 화목 가마에서 불이 지펴지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무척 신기하네요. 애들에게 값진 체험을 하게 해줘 정말 뿌듯해요"라며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카이스트 유학생인 인도네시아의 리프키 아피나 푸트리(23) 씨는 "한국에 와서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 보고 즐기고…다채로운 프로그램 줄이어

강진청자축제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우수축제로 선정됐을 만큼 한국의 대표적 역사문화축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올해도 '화목 불가마'를 비롯해 '점토 밟기' '물레성형' '고려청자 깨기' 등 모두 7개 분야 67개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펼쳐 방문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맘껏 체험토록 했다.
이와 함께 초대형 워터슬라이드를 설치해 여름축제의 스릴을 느껴보게 했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100m 짚 트랙도 운영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점토로 온몸을 문지르며 더위를 식히는 '점토 바디 트리트먼트'도 즐길 수 있었다. 방문객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는 오색 우산그늘과 함께 그늘막, 차광막 등을 곳곳에 쳐놓아 예술도 즐기고 더위도 쫓는 일거양득의 기쁨을 누리게 했다.
방문객들의 발길로 더욱 붐빈 곳 중 하나는 물레성형체험장. 50개의 전동물레가 설치된 이곳에서는 지원자들이 전남대 도예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수비(水飛)된 점토로 다양한 형체를 만드는 성형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신기한 경험을 몸소 해보려는 외국인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물레성형 중인 러시아 출신의 보가트료바 마리아(32) 씨. 조그마한 컵의 모양 잡기에 나선 그녀는 "진흙이 정말 곱고 부드럽다"며 "아이에게도 오랜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서울에 살고 있다는 안나 데미덴코(34) 씨는 "첫 경험인데 한국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며 호기심 어린 손길로 점토를 조심스레 매만졌다.
한여름 무더위를 물과 함께 시원하게 식히기에는 초대형 워터슬라이딩이 제격이었다. 도예문화원의 뒤편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이 150m의 워터 슬라이드는 물비탈을 쏜살처럼 미끄러져 내리며 환호성을 내지르는 피서객들로 연일 붐볐다.
국민대 대학원에서 토목학을 공부한다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라리아리마랄라 아리아니나 미카엘(27) 씨는 검은 피부의 친구 네 명과 함께 스릴 넘치는 비탈 미끄러지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너무너무 재밌어요! 욕심 같아선 워터슬라이드가 더 높고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라며 그저 싱글벙글.
딸, 사위, 아들, 손녀 등 가족 여섯 명이 함께 온 황형순(60·목포) 씨도 미끄러져 내리는 비탈이 무섭지 않으냐고 묻자 "처음이지만 하나도 안 무섭소. 내가 원체 건강하게 생기지 않았소?"라며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지으며 출발선에 당당히 다시 섰다.



◇ 금계포란형의 길지…고려청자 본고장

축제장에서 사면을 둘러보니 기묘한 기운이 문득 느껴진다. 바로 뒤편으로 암탉 형상의 여계산(女鷄山·높이 311m)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오른쪽 저만큼에는 수탉 모습의 대계산(大鷄山·높이 383m)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대구 들녘에는 달걀 형상의 조그만 봉우리 네 개가 서쪽의 바다를 향해 줄줄이 벌판의 섬처럼 놓여 있다.
전형적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길지(吉地). 닭과 관련된 이 지역은 풍수지리상으로 기묘한 연상작용을 또다시 불러일으킨다. 닭이 황금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듯이, 화목가마 또한 점토를 품어 청자를 탄생시킨다고나 할까.
현재 강진에는 전국에서 발견된 400여 기의 옛 가마터 가운데 절반가량인 188기가 이곳 대구면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 강진에서 청자가 생산되기 시작한 때는 8~9세경으로, 이는 이 지역의 다양한 여건이 청자 생산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장보고 대사가 지금의 완도인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무역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이곳에서 20km가량 떨어진 대구면 일대에서는 쇠퇴기인 14세기까지 청자가 대량으로 생산됐다. 강진이 청자문화의 요지가 되는 데는 해상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태토와 연료, 수질, 기후가 어느 지역보다 적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초창기에는 고려청자가 중국의 청자를 그대로 모방했으나 이후 독창적인 아름다움의 색깔과 무늬를 넣는 기법으로 고유성과 신비함을 확보해나갔다. 중국의 청자가 두껍고 불투명한 유약 때문에 무거운 느낌이 든다면 고려청자는 유약이 얇아 맑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나아가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기 전에 그림을 새기고 그 자리에 백토나 흑토로 채운 뒤 유약을 발라서 구워낸 비취색의 상감청자는 고려청자의 정수로 꼽힌다. 국보와 보물급 고려청자 중 80%는 바로 이곳 강진산이다.
이 같은 청자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해마다 청자축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는 것. 강진청자축제는 1973년부터 개최된 '강진군민의 날 및 금릉문화제'를 그 연원으로 한다. 청자문화 등 강진군의 역사와 그 보고를 널리 알리기 위해 출발한 금릉문화제는 1996년에 명칭을 '강진청자문화제'로 바꾸면서 고려청자문화의 복원과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 이어 2009년에는 '강진청자축제'로 명칭의 일부를 바꾸어 축제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강진청자축제는 1997년부터 2016년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국가지정 집중육성축제 5회, 대표축제 2회, 최우수축제 13회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에 힘입어 일부 고교 교과서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축제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전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36호인 청자장 이용희(79·강진 동흔요 대표) 씨는 "20대 때인 1964년 입문해 1977년부터 도자기를 구워왔다"면서 "축제 시작부터 간여해온 사람으로서 해마다 많은 참여와 좋은 평가를 얻어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 넘치는 축제 열기로 해마다 '후끈'

강진청자축제는 과거의 역사축제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세대에 맞는 현대의 문화축제로 매년 거듭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점토밟기, 물레성형 등 주요 체험장 부스를 그늘막이 있는 숲에 설치해 청량감을 더했고 개막식도 퍼포먼스와 영상쇼 중심으로 진행해 신선함을 안겼다.
남문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청자향로 모형과 축제장 중앙에 설치된 대형청자분수 역시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150m 길이의 실개천도 폭염을 식히는 데 한몫했다. 관광객이 참여해 함께 즐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대폭 확대된 가운데 물놀이 체험 등 여름 휴가철을 감안한 놀이시설도 크게 늘린 것이다.
이번 축제는 청자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모든 청자를 기존 가격보다 30% 할인해 판매함은 물론 매일 두 차례씩 50~70%까지 할인하는 '폭탄세일'도 했다.
한옥판매장에서 연판문의 컵을 특별할인가격으로 구매한 김기영(73·대전) 씨는 "올해로 세 번째 축제장을 찾았다"면서 "아내가 청자를 워낙 좋아해 선물로 샀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진이 친정이라는 최진(33·광주) 씨는 "청자의 빛깔이 좋아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한다"며 "고향의 정취가 가득 담긴 밥상을 만들어보기 위해 이번에는 반상기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청자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8월 3일 오후 진행된 화목 가마의 청자 경매. 개막일부터 이틀간 굽기 과정을 거친 60여 점의 청자는 나흘 동안 식혀진 뒤 이날 오전 요출된 뒤 도예가들의 검증을 통과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즉석 경매에 부쳐졌다.
올해 축제 기간에 찾은 관광객은 모두 32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외국인은 예년보다 많은 1천여 명이 방문해 축제 열기를 더욱 뜨겁게 했다. 강진군에 따르면 이번 축제로 청자 판매 4억3천만원, 향토음식 판매 2억여원 등 모두 6억9천여만원의 축제장 직접매출 성과를 거뒀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청자축제를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마량놀토수산시장, 가우도 출렁다리와 청자타워 짚 트랙, 강진 3대 물놀이장 등 청자축제장과 연계된 군내 관광지에도 인파가 대거 몰려 지역 홍보와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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