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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 속 베풂의 삶'…목포의 물지게꾼 '옥단이' 재조명
3일 개막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서 부활 목포 구도심엔 '옥단이길'…가진 것 없어도 베풀었던 삶 조명
2017-08-02 14:21:30최종 업데이트 : 2017-08-02 14:21:30 작성자 :   연합뉴스
'천대 속 베풂의 삶'…목포의 물지게꾼 '옥단이' 재조명_1

'천대 속 베풂의 삶'…목포의 물지게꾼 '옥단이' 재조명
3일 개막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서 부활
목포 구도심엔 '옥단이길'…가진 것 없어도 베풀었던 삶 조명

(목포=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1930년대 어느 날 목포 유달산 아랫마을에서 한 여인이 뒤뚱거리며 물지게를 지고 나타난다.
이를 지켜보던 동네 아이들이 "옥단아 뭘 먹고 살쩠냐?"며 놀리지만, 옥단이는 "누룽밥 먹고 살쪘제"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목포 출신의 차범석(1924∼2006) 극작가의 연극 '옥단어'(2003년작)의 첫 부분이다.



옥단이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목포 유달산에서 물을 길어주고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지능은 조금 떨어지지만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동네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
지금도 목포에서는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넓은 마음 씀씀이를 기억하는 노인들이 많다.
차범석 극작가는 팔순을 맞아 '옥단이'를 소재로 한 희극 '옥단어'를 썼다.
'어'는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목포 사투리로 당시 사람들은 옥단이를 '옥단어'라 불렀다고 한다.
차범석 극작가는 생전에 쓴 글에서 "옥단이는 만인의 벗이었다"며 "천대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며 남을 위해 베풀다가 길지 않은 생애를 마친 불행한 여인 옥단은 우리 민족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고향을 사랑했던 원로 극작가에 의해 연극으로 부활했던 옥단이는 목포 구도심 재생사업에 힘입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3일 개막하는 제17회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에서는 옥단이가 개막놀이에서 등장한다.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추진위원회는 목포의 4대 명물 가운데 하나인 물지게꾼 옥단이를 5m 크기의 인형으로 만들어 거리 퍼레이드를 펼칠 예정이다.
가난하고 바보스럽지만 많은 사람에게 춤과 노래로 웃음을 안겨줬던 옥단이를 거리로 불러내 신명 나는 무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옥단이 인형을 선두로 시민 배우 30명이 옥단이로 분장해 물지게를 지고 뒤를 따르는 등 200여 명이 다양한 옥단이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손재오 연출가는 "옥단이는 신체적으로는 부자연스러웠지만 순박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며 "그날만큼은 우리 내면에 촌스럽고 바보스러움을 밖으로 내비치고 순수한 세계로 돌아가 보자는 취지로 개막놀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개막놀이는 3일 오후 7시 목포 원도심 로데오광장에서 열리며 개막식과 의전 행사는 생략했다.
옥단이가 활동했던 유달산 아래 골목길은 목포 구도심재생사업으로 '옥단이길'로 조성되고 있다.
작년부터 골목길 해설사 17명을 양성했고 도보 여행자를 위한 이정표와 안내문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최성환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근대 문화 체험 장소는 주로 일본인들이 살았던 마을이 주를 이루는데 옥단이길은 한국인들이 살았던 원도심에 생겼다"며 "일본인들이 만든 식민의 역사가 아닌 우리 선조들이 살아왔던 진짜 근대의 모습이 옥단이길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minu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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