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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옛이야기 들려주는 청도 운강고택
2017-05-11 08:02:47최종 업데이트 : 2017-05-11 08:02:47 작성자 :   연합뉴스
[연합이매진] 옛이야기 들려주는 청도 운강고택_1

[연합이매진] 옛이야기 들려주는 청도 운강고택

(청도=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봄이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청도는 물이 맑고 산이 푸르며 인심이 순후해 예로부터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렸다. 경북의 최남단에 있는 청도는 수려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1천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고찰 운문사, 전형적인 평지성과 산성의 중간형태의 특성을 보여주는 청도읍성, 조상의 지혜가 담긴 석빙고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1479~1560)이 무오사화를 겪은 뒤 벼슬을 사양하고 들어와 살며 밀양 박씨 집성촌을 이룬 금천면 신지리는 운강고택과 만화정(중요민속자료 제106호)을 비롯해 섬암고택, 운남고택, 도일고택 등 고택들이 즐비하다. 오랜 세월을 견딘 고택은 아름다운 건축미와 삶의 지혜를 담아 후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청도군 금천면사무소에서 91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금천교를 건너면 금천면 신지리에 닿는다. 예전에 섶마리, 섶말 등으로 불린 신지리는 동창천이 감싸고 있는데 마을 앞 2차선 도로에서 토석담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꺾어 막다른 골목 끝에 이르면 솟을대문이 눈길을 붙든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 막다른 골목길을 만든 것은 외부로부터 집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집 안에 들어온 복과 재물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은둔자의 삶을 살겠다는 선비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이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조선 순조 9년(1809)에 현 소유주의 6대조인 박정주(朴廷周)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이다.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이 1824년(순조 24년) 집터를 넓히고, 박순병이 1905년 다시 중수했다. 이종기 문화관광해설사는 "고즈넉한 고택은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여든여덟 칸짜리 운강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각각 마당을 가운데 둔 'ㅁ' 자형으로 되어 있고, 상하의 구분을 분명히 하는 양반가옥의 규범을 잘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 삶의 지혜 녹아든 여든여덟 칸짜리 저택

문간채에 있는 솟을대문에는 홍살이 없고 김충현이 썼다는 운강고택(雲岡故宅) 당호가 격자형 설창 위에 걸려 있다. 담장도 높아 깨금발을 해도 고택 마당이 보이지 않는다. 솟을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대문간에 무쇠솥 한 개를 건 아궁이가 있는데 대문채의 온돌방을 데우는 아궁이다. 이곳을 지나면 사랑마당이 나온다. ㅁ 자형 사랑마당에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채, 문간채 4동이 있고. 사랑채는 마당 북쪽의 잘 다듬은 기단 위에 앉아 있다.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인 사랑채는 툇마루를 들인 마루방 2칸과 사랑방 2칸, 툇마루가 없는 청지기방 1칸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뒷사랑방은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해주는 내밀한 공간이다. 이 방은 사랑마당을 거치지 않고 안채로 가는 통로이자 친정아버지와 오라버니 등 남자 손님이 찾아오면 상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곳곳에 여자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소통의 공간이 숨어 있다.



대청 내벽에 걸려 있는 성경당(誠敬堂)이라는 편액은 늘 마음의 긴장을 놓지 않겠다는 선비의 자세를 느끼게 한다. 또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반질반질 손때 묻은 기둥과 마룻바닥은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되는 옛것의 소중함을 전해준다.
사랑채 옆 꽃담은 막돌을 이용해 얼마간 쌓아 올린 다음, 그 위로는 기와 조각을 박고 사이 사이에 백회를 발랐다. 담에는 길할 길(吉) 네 자와 꽃 그림 4개를 새겨 넣었는데 늘 좋은 일만 있기를 염원하는 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반면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 담벼락은 흙으로만 밋밋하게 만들어 놓았다. 담에서조차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신분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대문채와 마주 보고 있는 중사랑채는 사랑채와 같은 기단과 주춧돌의 형식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공부를 하는 강학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네 칸 '一' 자집으로 마루방은 측면 벽이 나무를 이용한 판벽으로 된 것이 특이한데, 이 공간은 누마루로서 서고(書庫)로 쓰였다고 한다. 중사랑채 후원은 부귀다남을 상징하는 석류나무가 있어 백류원(百榴園)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나무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가마와 사인교 등 교통기구들을 수납하던 고방채의 맨 끝 칸에는 말을 묶어 두던 마판(馬板)으로 꾸며져 있다. 대문채는 여섯 칸 규모이며, 문간방 2칸, 측간 2칸, 곳간과 외양간을 1칸씩 두었다. 특히 이 측간은 문 위에 판재를 대고 매화나무를 새겨 넣었다. 꽃핀 매화나무로 측간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어 선비다운 품위와 멋을 느낄 수 있다.
사랑채를 지나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담장이 앞을 가로막는다. 왼쪽으로는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사당으로 가는 협문이 나타난다. 협문을 들어서면 복사꽃과 자두나무꽃이 팝콘을 뿌려 놓은 듯 활짝 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된 사당의 일각문은 높이를 낮게 만들어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도록 했다.



◇ 방과 방 사이 대청마루…며느리 위한 공간

중문채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 구조도 ㅁ 자형으로 안마당을 가운데 놓고 안채와 행랑채, 고방채, 중문채 등 4동이 들어서 있다. 안채는 비교적 잘 다듬은 네모난 돌을 3벌대로 쌓고 세 개의 계단을 만든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전면 일곱 칸, 측면 한 칸 반의 안채는 앞뒤로 툇마루가 있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부엌이 서로 잇달아 있고, 맨 오른쪽에는 건넌방이 배치돼 있다.
이종기 해설사는 "방과 방 사이에 대청마루를 둔 것은 며느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부부 사이나 고부 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대청마루와 축대 사이의 나무 발 받침과 머름이 눈에 띈다. 디딤돌을 놓지 않고 직접 마루 귀틀에 나무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여성들이 오르내리기 쉽도록 대청마루와 축대 사이에 계단 높이의 받침을 한 층 더 둔 것이다. 머름은 창 아래 설치된 높은 문지방으로 사람이 머름대 위에 팔을 걸치고 앉아서 편안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30∼45㎝ 정도의 높이로 만들어진다. 머름은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시선을 차단하는 사생활보호 역할도 한다.
방마다 후원이 보이는 관창을 둬 창을 열면 창 가득 자연이 들어온다. 건넌방에는 툇마루 외에 후원 쪽으로 쪽마루를 둔 것이 흥미롭다. 툇마루는 툇간에 설치된 마루고, 쪽마루는 방안으로 출입을 편리하도록 만든 작은 마루다. 갓 시집온 새색시는 이따금 이 쪽마루에 앉아 바람과 햇살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휴식을 즐겼을 것이다. 지금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안채 뒤뜰에는 칠성바위라 불리는 바위 7개가 있는데 여인들이 치성을 드리던 곳이다.
행랑채는 부엌, 방, 마루, 고방, 방앗간을 각각 한 칸씩 一 자로 두었다. 부엌의 광창은 문 위에 있는 간단한 살창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바닥을 띄운 마루를 만들어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고 있다. 일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과학적 지혜가 돋보인다. 중문채는 안채에서 사용하는 의류나 그릇과 같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아무 생각 없이 느릿한 걸음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걷다 보면 고택이 들려주는 옛이야기 속에 봄은 더욱 푸르게 빛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 동창천변의 아름다운 정자 '만화정'

운강고택에서 한 걸음 대문 밖으로 나서면 동창천변의 아름다운 정자 만화정(萬和亭)이 있다. 경사지를 이용해 1856년 세운 만화정의 누마루에 올라 동창천과 만화평(萬花平)을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이종기 해설사는 "정자를 세운 운강 박시묵이 풍요를 더해 주는 앞들 이름을 따되 화(花)를 화(和)로 바꿔 놓았는데 이는 화려한 것을 숨기고 실질을 지니고자 하는 뜻을 담고자 했던 것"이라며 "한국전쟁 때엔 이승만 대통령이 피란민 격려차 방문해 하루 묵어가기도 했다"고 말한다.
정문의 처마 끝에는 '도(道)를 근본(根本)으로 한다'는 글귀인 유도문(由道門)을 편액으로 걸어 놓았다. 유도문을 지나면 만화정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온다. 돌계단의 난간 앞 기둥 좌우에는 옳게 바로잡는다는 의미인 '義正(의정)'과 어질고 평안하게 한다는 '仁安(인안)'이 새겨져 있다.



만화정은 한 칸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 방 1칸, 동쪽에 2칸의 통방을 배치했고, 누마루 3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러 꾸몄다. 마루에 올라 고개를 들면 만화정 편액과 함께 25점에 달하는 시구의 현판이 정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판마다 편액의 테두리를 꽃이나 새, 나무들의 그림들을 새겨넣어 시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양한 모양의 글씨체와 편액은 옛 그림을 걸어놓은 듯하고,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의 얘기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누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강변에 늘어선 나무들의 초록빛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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