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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석식 없애자' 이재정표 두번째 교육혁신 한 달
"비정상 바로잡아 창의인재 육성"…"현실외면ㆍ사교육 팽창" 비판도 전문가 "시범사업 없었던 점 아쉬워…단위학교 자율성 보장해야"
2017-04-02 07:04:36최종 업데이트 : 2017-04-02 07:04:36 작성자 :   연합뉴스
'야자·석식 없애자' 이재정표 두번째 교육혁신 한 달_1

'야자·석식 없애자' 이재정표 두번째 교육혁신 한 달
"비정상 바로잡아 창의인재 육성"…"현실외면ㆍ사교육 팽창" 비판도
전문가 "시범사업 없었던 점 아쉬워…단위학교 자율성 보장해야"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9시 등교' 열풍을 가져온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고교 야자와 석식 지양 원칙'으로 또 한 번의 공교육 혁신을 시도했다.
불필요한 업무가 줄면 교사들도 정규수업에 집중하게 되고, 그 혜택은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구상이다.
학생들을 대입에만 옭아매지 말고 스스로 진로와 꿈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문화를 지향한다는 철학도 담겼다.



반면 학교가 그동안의 역할에서 갑작스레 손을 떼면서 사교육 시장만 배 불린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입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경기도 학생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며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는 불만도 이어진다.

◇ '비정상을 바로잡자' 고교정상화 본격 추진
경기도 성남의 A고등학교는 새 학기가 되면서 교사들의 야근이 대폭 줄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밤 10시까지 교실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야자 참여 학생 수가 30명가량으로 확 줄었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줄자 야자 관리에 필요한 지도교사도 6명에서 3명으로 감소했다.
하남의 B고등학교 한 교사는 작년도 야근수당을 계산해보니 1년간 약 600만원에 달했다.
야자 감독 탓에 야근하는 날이 많았는데 올해부터는 야근 최소화 방침에 따라 수당이 주는 대신 '저녁 있는 삶'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도교육청의 야자 및 석식 지양 원칙이 학교현장에 스며들면서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은 교사들의 근무 형태다.
그동안 고등학교는 야근이 잦아 중등교사들 사이에서도 중학교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었는데, 도교육청의 방침으로 고교 교사들의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청은 이러한 변화가 곧 수업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도교육청 고교교육정상화담당 오정호 장학관은 "잡무가 줄어들면 교사들이 정규수업 준비에 100%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설명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겐 자기 주도적 능력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해진 답을 외워 높은 성적을 얻는 '공부'보다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도교육청은 이달부터 수도권 77개 대학 86개 캠퍼스가 참여하는 '꿈의 대학'을 시작한다.
야자 때문에 학교에 남는 대신 인근 대학 강의실에서 교과서에는 없는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들으면서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겠다는 방침이다.

◇ '대입이 바뀌지 않는 한…사교육만 부추길 것'
도교육청의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일부 학교현장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신과 수능 성적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 대학입시 제도에서 경기도 학교들만 야자와 석식을 지양해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될 것이란 지적이다.
조미혜 성남고등학교 운영위원협의회장은 "십여 년간 대입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왔던 학생들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야자와 석식을 못하게 하니까 학부모 사이에선 '이럴 거면 사립이나 특목고 보내자, 이사 가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부모 마음은 누구나 자녀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싶을 것이나 여건상 불가능한 가정도 분명히 있다"며 "교육적으로나 학생 건강 측면으로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부 학교장도 도교육청의 정책에 난감해 한다.
하남의 C고교 교장은 "교육청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하지만 사실상 교육감의 뜻을 어길 공립교장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작년보다 기준을 강화해 석식 수요자를 파악하니 당연히 수요가 줄어 석식을 못하게 됐고, 자연스레 야자 참여 학생도 줄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솔직히 학생들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돼 야자나 석식이나 학교에서 예전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수원의 D고교 교장은 "교육감의 취지에는 동감하며 앞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교문 밖에서 저녁밥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교육청의 방침으로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릴 것도 우려한다.
실제로 많은 학교가 석식을 중단하고 야자를 최소화하면서 고교 인근 사설 독서실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저녁급식을 제공한다는 독서실까지 생겼다.



성남의 한 관리형 독서실 관계자는 "90명 넘는 정원은 이미 다 찼고 대기자도 있다"며 "올해부터 인근 학교가 석식을 중단했기 때문에학생들을 위해 우리 독서실에선 단체 도시락을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숙려기간 필요했다…단위학교 자율성 보장도 중요"
전문가들은 민선 교육감의 정책이 교육현장에 올바로 정착하기 위해선 단위학교의 자율성 보장과 충분한 사전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기대 하봉운 교직학과 교수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는 향후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서 충분한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을 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주민에게 검증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은 제대로 집행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석식과 야자와 같은 문제는 학교마다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므로 단위학교 학교운영위의 결정에 전폭적으로 맡겨야 한다"며 "'무조건 이게 맞다'며 암암리에 옥좨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재철 대변인은 "이상만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다"며 "현실을 고려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행정 책임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선 교육감의 자율적인 교육정책을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임철일 교육학과 교수는 "국가가 정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으로 우리 사회 교육문제의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정책에 대한 평가는) 진행과정을 지켜보며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young8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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