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공원서 재인청(才人廳) 춤 공연
고성주 씨, 화성재인청 이동안 선생 사사 춤 선보여
2014-10-17 09:52:51최종 업데이트 : 2014-10-17 09:52:5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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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엔 '화성재인청'이라는 예인 조직이 있었다. 재인청은 무속인, 화랭이, 광대, 재인, 예인 등 민간 기예인들의 활동을 총괄하던 곳으로, 전국에 산재한 많은 예인들이 이 재인청에서 학습을 하거나 적을 두고 있었다.
![]() 고성주 씨/사진 하주성 민속연구가 하주성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의 기예능보유자로 생을 마친 고 운학 이동안 선생은, 화성군 향남면에서 재인청의 세습광대 후예인 이재학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통감을 4권까지 익혔을 때, 마을에 들어 온 남사당패로 인해 그는 14세 때 남사당패를 따라 방랑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가출한 이동안 선생은 황해도 한 장터에서 부친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몸 안에는 이미 재인의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4년 만에 다시 집을 떠난 선생은 서울로 올라가 광무대에 취직을 하고 이곳에서 어름줄타기를 배웠다. 이때 만난 스승이 김인호와 박춘재이다. 스승 김인호로 부터는 태평무, 승무, 살풀이, 진쇠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등 재인청 계열의 춤을 수십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박춘재로 부터는 발탈 기능을 배웠다. 평생을 그렇게 방황을 하던 고 운학 이동안 선생은 말년에 수원으로 돌아와, 화성행궁 옆 화령전 풍화당에서 기거를 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밝힌다. 하 씨에 의하면 이때 나이어린 소년이 한 명이 문하로 들어와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시 이곳에 모인 재인청의 선생들은 이 어린 소년을 '초립동이'라고 불렀다. 그 초립동이가 바로 무대에 재인의 춤을 올리는 고성주 씨라는 것이다. 고성주 씨는 매년 한 차례씩 이동안 선생을 기리는 춤판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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