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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 화전마을 어둔리의 천지개벽…비결은?
2016-09-14 07:00:05최종 업데이트 : 2016-09-14 07:00:05 작성자 :   연합뉴스
'난타'로 주민 화합·마을 알리기 '두 마리 토끼' 잡아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농림부 장관상
(횡성=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척박한 땅이 천지개벽을 했어요"
강원도 횡성군과 홍천군의 접경으로 횡성군 최고 오지로 불렸던 횡성군 공근면 어둔마을.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해가 잘 들지 않고 어둡다고 '어둔리(於屯里)'라 불렸다는 이 마을은 몇 년 전만 해도 자식들 굶기지 않는 것이 꿈일 정도였다.
해발 930m로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음산(五音山) 자락에 있는 어둔리는 대부분 지대가 산지로 이뤄져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벼·옥수수·감자·고추 농사에 소 키우기 등 '복합영농'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100여 가구의 화전민이 모여 살던 이곳은 근대화 바람과 함께 자녀들 공부 등을 위해 하나둘씩 떠나 한때 100명이 훨씬 넘던 마을주민이 50명 내외로 절반가량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깨끗한 공기, 깊고 맑은 계곡, 훼손되지 않은 자연, 텃세 없는 마을인심은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어릴 때 학업 때문에 고향을 떠났던 청년들과 어둔리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친 도시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해 다시 100명 수준으로 회복됐다.
어둔리 이장 최현진(52) 씨는 어둔리서 태어나 어릴 때 횡성읍으로 이사했다가 23년 전 귀향했다.
지난해 초부터 '젊은 이장'으로 취임한 뒤 청년회장·새마을지도자 등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을 분위기 쇄신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회장 유진호(46) 씨도 원주민 출신으로, 어려서 외지로 나가 살다 고향이 그리워 30대 초반이던 15년 전 돌아와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면서 마을을 젊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아무 연고 없이 그냥 이곳이 좋아서 귀농·귀촌한 사람들도 계속 늘어나 전체 가구 수의 절반 가까이 되고 있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노인회 총무 한기철(70) 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를 샅샅이 돌아본 뒤 5년 전 어둔리에 정착했다. 동생(61)도 어둔리에 반해 형 집 바로 옆에 한창 집을 짓고 있다.
부녀회장 장계환(여·60) 씨는 고향이 고양시며 남편도 서울사람.
전원생활을 동경하면서 마땅한 곳을 찾던 남편이 2003년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서울서 크게 멀지 않은 이곳에 터를 잡고 한동안 주말마다 내려와 텃밭을 가꾸다가 2010년 퇴직하면서 정착했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새마을지도자 위재성(45) 씨는 서울서 기계부품 판매업을 하는 매형을 돕다가 거래처 부도로 어려워지면서 어둔리에 사는 친구 부모님 댁에 놀러 온 것이 인연이 돼 눌러앉아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다.
위 씨는 이장을 도와 서무일 등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낮은 농가수입에 침체한 마을 분위기,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때 천지가 개벽하듯 어둔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이 '어둔리 오음산 난타'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젊은 층과 귀농·귀촌 가정이 늘어나면서 소통과 화합, 마을 알리기를 위해 뭔가 해보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이것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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