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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시인 네루다가 사랑한 칠레 발파라이소, 벽화마을로 변신
2016-08-23 10:00:00최종 업데이트 : 2016-08-23 10:00:00 작성자 :   연합뉴스
네루다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 자리한 칠레 항구도시 발파라이소
언덕 오르내리는 승강기 아센소르와 벽화로 인기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산티아고에 지쳤네. 조용히 글을 쓰면서 지낼 작은 집을 발파라이소에 구하고 싶은데 몇 가지 조건이 있어. 너무 높거나 낮은 곳에 있으면 안 돼. 외딴곳이어야 하지만 너무 지나치진 않았으면 하네. 이웃들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 돼. 모든 것으로부터 멀지만, 대중교통은 가까웠으면 하고. 게다가 매우 저렴해야 해. 그런 집을 발파라이소에서 찾을 수 있을까?"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59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르포> 시인 네루다가 사랑한 칠레 발파라이소, 벽화마을로 변신_1
언덕에서 내려다본 발파라이소 시내</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알레그레 언덕에서 내려다본 발파라이소 풍경. 2016.8.22</p> <p> jk@yna.co.kr
<르포> 시인 네루다가 사랑한 칠레 발파라이소, 벽화마을로 변신_1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AP=연합뉴스 자료사진)

번잡한 수도 산티아고를 떠나려는 시인의 모순 가득한 바람은 1961년 9월 발파라이소의 플로리다 언덕(Cerro Florida)에 있는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에 발을 들이면서 실현됐다.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영감을 얻은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아 칠레의 자랑이 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고 있던 1973년 의문의 죽음을 맞은 시인이 사랑한 발파라이소는 오늘날 도시 곳곳의 벽면을 채운 온갖 벽화와 그라피티로 더욱 유명해졌다.

네루다의 유산에 후대 화가들의 노력이 더해져 발파라이소는 남미에서 손꼽는 예술도시로 자리 잡았다.

◇ 칠레의 벽화 마을 된 발파라이소…거리 곳곳 장식한 벽화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발파라이소는 과거부터 아름다운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에는 유럽에서 출발해 미주 대륙 서안으로 향하는 선박이 남미 대륙 남단 마젤란 해협을 돌아 기착하는 경유지로 융성했다.

운하 개통 이후엔 무역 도시의 명성은 퇴색했으나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서 신세계로 이주하려는 이민이 계속 몰려 다양한 문화가 녹아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19세기 후반 세계화의 과정이 잘 보존된 덕에 발파라이소 중심가 일대는 2003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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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파라이소의 벽화</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건물 벽화 앞에 한 어린이가 서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았던 발파라이소는 1980년대부터 화가들이 건물에 벽화를 그리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2016.8.22</p> <p> jk@yna.co.kr

유산이라고 해서 옛 모습만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 발파라이소는 도시 곳곳을 장식한 각종 벽화로 모습을 새로 꾸미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만난 발파라이소 주민 프란시스코 도밍게스(38)는 "대략 1980년대 말 정도부터 건물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풍조가 생겨났다"며 "다른 도시들에 흔한 스프레이 그라피티와는 다르다. 벽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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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파라이소의 벽화</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길거리에서 촬영한 벽화.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았던 발파라이소는 1980년대부터 화가들이 건물에 벽화를 그리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2016.8.22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벽화는 어느덧 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해안 저지대의 상업지구에서 벗어나 도시 중심부의 언덕 지역으로 올라가면 벽화가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발파라이소 토박이라는 크리스티안 카베요(45)는 "그림은 장기간 보존을 위해 완성 이후 한동안 비닐 등으로 덮어둬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건물주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주민들도 도시를 다채롭게 꾸미는 벽화 그리기를 지지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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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파라이소의 벽화들</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길거리에서 촬영한 벽화들.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았던 발파라이소는 1980년대부터 화가들이 건물에 벽화를 그리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2016.8.22

발파라이소에는 벽화로 가득한 언덕 지역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1800년대 말부터 만들어져 주민들의 교통수단으로 애용되는 승강기 아센소르(ascensor)다.

스페인어로 아센소르라고 하면 대개 엘리베이터를 뜻하지만, 발파라이소의 아센소르는 가파른 언덕의 경사면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오르내리는 이동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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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파라이소의 승강기 '아센소르'</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승강기 '아센소르'(ascensor)가 레일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다. 아센소르는 발파라이소 도심에 많이 있는 언덕들을 시민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부터 건설됐다. 2016.8.22</p> <p> jk@yna.co.kr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남미 여행을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도 체 게바라가 발파라이소에 들렀을 때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 편지를 받고 낙담한 채 아센소르에 몸을 싣는 장면이 나온다.

발파라이소에는 여전히 운영 중인 아센소르가 7개 있다.

특히 1883년에 만들어져 가장 오래된 콘셉시온 언덕의 아센소르는 조금만 늦게 가도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관광 명소가 됐다.

탑승 요금은 편도 1회에 100∼300 칠레 페소로 가장 비싼 곳도 한국 돈 500원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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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파라이소의 승강기 '아센소르' </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승강기 '아센소르'(ascensor)를 운영하는 직원이 기기를 조작하고 있다. 아센소르는 발파라이소 도심에 많이 있는 언덕들을 시민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부터 건설됐다. 2016.8.22</p> <p> jk@yna.co.kr

이날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후안 구티에레스(27)는 "평일엔 해안가의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엔 언덕 위의 부모님 집을 방문하는데 이때 아센소르를 탄다"며 "물론 걸어서도 올라올 수 있는 낮은 언덕이지만 오랜 시간 시민의 발이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센소르 운행 구간은 보통 100m가 채 안 되는 짧은 구간이고 이동 시간도 수십 초 정도다.

하지만 낡은 목제 의자에 앉아 덜컹거리면서 올라가는 아센소르 뒤편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시와 바다의 풍광은 수많은 관광객을 끄는 매력적 요소가 되고 있다.

◇ 네루다 숨결 스며든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

북쪽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낮은 주택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홀로 솟은 5층짜리 집은 주변과 다소 동떨어진 듯하다.

5층이라고는 해도 구조상 각 층은 좁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아주 큰 건물은 아니고, 시내에 있는 집이니 도시의 편의시설과도 멀지 않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바다와 앞쪽 집들의 지붕을 내려다보는 전망은 탁 트였고 남반구 칠레의 북향 건물이니 낮에는 햇살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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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집 '라 세바스티아나'</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를 촬영한 모습.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네루다는 1961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 거주했다. 2016.8.22</p> <p> jk@yna.co.kr

발파라이소에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는 시인이 원했던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있었다.

저택 앞에 마련된 잔디밭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한 독일인 관광객은 "네루다가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집을 찾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에 어울리는 곳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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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집 '라 세바스티아나' 침실</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의 4층에 있는 침실을 촬영한 모습.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네루다는 1961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 거주했다. 2016.8.22</p> <p> jk@yna.co.kr

저택은 현재 파블로 네루다 재단이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외부에 있는 카페와 기념품 상점 등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네루다가 거주하던 시기의 모습을 재현해뒀다.

네루다는 당시 혼자서는 건물 전체를 살 여력이 없어 이 집을 찾아준 친구 마리 마트너와 공동으로 매입했다. 정원, 지하실, 1∼2층은 마트너가, 3∼5층은 네루다가 소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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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집 '라 세바스티아나' 실내</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 실내를 촬영한 모습.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네루다는 1961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 거주했다. 2016.8.22</p> <p> jk@yna.co.kr

그래서인지 안내 데스크와 기록물 상영실이 있는 1층, 그림 1점과 조각상만 있는 2층을 지나면 3층부터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침실, 서재, 전망대 등이 나온다.

실내를 둘러보던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산체스(34)는 "네루다는 한때 우리나라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해 그의 삶이 궁금해서 와봤다"며 "이 저택은 훌륭한 시인의 취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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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집 '라 세바스티아나' 실내</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 실내를 촬영한 모습.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네루다는 1961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 거주했다. 2016.8.22</p> <p> jk@yna.co.kr

박물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이 집에선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바다에선 해마다 12월 31일에 불꽃놀이를 한다"며 "네루다는 1972년의 마지막 날에도 생애 마지막이 된 새해를 라 세바스티아나에서 맞았다"고 전했다.

라 세바스티아나를 나오면 있는 집 근처 작은 공원에는 네루다의 실물 크기 동상이 바다를 등지고 서 있다.

받침대 없이 바닥에 고정돼 있어 친근하게 다가오는 형태다.

동상 옆을 지나던 발파라이소 주민 호세피나 파리아스(40)는 "발파라이소는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네루다라는 거장이 더욱 풍성한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며 "매일 이 동상을 보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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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 동상</p> <p> (발파라이소<칠레>=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동상을 촬영한 모습.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네루다는 1961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발파라이소의 저택 '라 세바스티아나'에 거주했다. 2016.8.22</p> <p> jk@yna.co.kr

j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23 10: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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