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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했던 한지
2017-09-13 08:01:02최종 업데이트 : 2017-09-13 08:01:02 작성자 :   연합뉴스
천 년을 견디는 韓紙의 보고 '전주한지박물관'
(전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견오백 지천년'(絹五百 紙千年)
비단은 500년을 가고, 종이는 1천 년을 간다는 말로 한지의 내구성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한지 제조과정에서 잿물로 닥나무를 삶아 종이의 성질이 약알칼리성을 띠고, 황촉규(닥풀)를 사용해 종이의 강도를 높여 천 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 보수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ㆍ국보 제126호)은 한지의 뛰어난 보존성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가탑을 창건할 당시인 서기 751년 통일신라 시대에 넣은 것으로, 탑 속 사리함에서 1천300여 년의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8세기에 만들어진 인쇄본이 좀먹기는커녕 그 형체가 오롯이 보존돼 있었다. 천 년을 가는 한지의 질긴 생명력에 그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뛰어난 보존성 때문에 세계적 문화재 보존용 종이로 주목받고 있다. 2004년 미국 문화재보존학회(AIC)에서 국립문서보관서(NARA) 문서보존처리 전문가에게 품질을 인정받았고, 아프리카 튀니지 국립도서관의 고문서 복원에도 한지가 활용됐다. 최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1951년부터 소장 중인 문화재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앙 2세 책상' 복원에 전주 한지를 사용했다. 이 책상의 손상을 피하기 위해 중앙 서랍의 자물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북이 등껍질의 내피 부분에 한지가 활용됐다.
◇ 세계에서 가장 질기고 오래가는 한지
일명 '닥종이'로 불리는 우리의 전통 한지는 오랜 세월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했다. 우리 선조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한지로 금줄을 쳤다. 돌상에 한지를 올려놓고 미래를 점쳤으며, 아이가 성장하면 한지로 제기ㆍ연 등을 만들어 주었다. 창호지ㆍ장판지ㆍ벽지를 바른 집에서 살았으며, 서책은 물론 생활용품을 한지로 만들어 사용했다. 혼례를 올릴 때면 한지에 정성을 다한 청혼서와 사주단자를 보냈다. 생을 다하면 죽은 사람의 몸을 한지로 감싸고 지전(紙錢)을 저승길 노잣돈으로 삼았다. 제사를 지낼 때는 한지에 지방과 축문을 지어 올렸다.
전주 한지는 고려 중기 이후 조선 후기까지 수백 년간 왕실 진상품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조선 초 전주의 조지소(造紙所)에서 생산된 전주 한지는 명나라와 청나라에 보내는 공물로 쓰일 정도로 명품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주에서 나라에 공급하는 종이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 닥나무를 구하기 어려워 백성들이 힘들어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조선 시대 통치의 기준이 된 경국대전에 등재된 지방의 지장(紙匠) 분포를 보면, 전주와 남원이 각각 23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전라북도의 특산물'이란 책은 "전북 조선지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지질이 강하고 정교하며, 그 명성이 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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