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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봄기운 살랑이는 곳으로의 여행
2017-03-05 08:01:01최종 업데이트 : 2017-03-05 08:01:01 작성자 :   연합뉴스

(거제=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봄은 참 더디게 온다. 시간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었지만 겨울의 꼬리는 매섭고도 길게 이어진다. 봄의 따스한 온기와 싱그러운 빛깔을 찾아 남쪽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고대하던 봄의 기운이 시나브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르키소스. 수많은 처녀와 님프의 구애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이다. 어느 날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빠지고 만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는 수선화 한 송이가 피어났다. 자기애나 자아도취를 뜻하는 '나르시시즘'의 유래다. 나르키소스의 운명은 비극적이지만 아무것도 대체할 수 없는 그의 수려함은 수선화로 다시 피어났다.
거제도 남동쪽 끝자락에는 매년 봄 화사하게 피어난 수선화가 사람들의 마음에 봄기운을 전하는 마을이 있다. 일명 '공곶이'. 지형이 궁둥이처럼 바다를 향해 튀어나왔다 해서 거룻배 '공'(鞏) 자와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땅이란 뜻의 '곶'(串) 자를 합쳐 붙인 이름이다.
공곶이는 예구마을 주차장에서 이정표를 따라간다. 예쁜 펜션이 서 있는 가파른 비탈을 10분 정도 걸으면 능선에 이르고 반대편으로 10분을 내려가면 공곶이에 닿는다. 능선에서 공곶이로 이어지는 길은 계단이 300개가 넘는 가파른 동백나무 터널이다. 붉은 꽃 내려앉은 끝 모를 터널은 마치 딴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 같기도 하다.
◇ 수선화 피어나는 바닷가 마을
2월 초순 농장에서는 옥빛 바다를 배경으로 노랗게 핀 수선화의 물결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수선화의 푸른 줄기는 한 뼘만큼 솟아 봄날의 싱그러움을 알리고, 해안선을 따라 서 있는 종려나무는 이국적인 풍광을 선사했다.
"여긴 눈이 좀체 안 오는데 지난겨울은 추웠나 봐, 눈발도 날리고…. 종려나무 근처나 밭을 보면 제주도 수선화랑 이스라엘 수선화가 폈어. 좀 춥긴 해도 봄이 벌써 온 기라." 머리가 허연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껏 즐기다 가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밭 한쪽에선 하얀 수선화가 군락을 이루고, 종려나무 아래에선 하얀 꽃받침에 노란 꽃술을 품은 별 모양 수선화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3월부터 피어나는 샛노란 수선화는 4월 중순까지 공곶이를 노랗게 수놓을 것이다.
농장 끝자락에는 크고 작은 돌이 뒤섞인 몽돌해변이 있고, 시리도록 푸른 바다 건너에는 내도가 버티고 섰다. 해변을 따라 한껏 부드러워진 바람을 맞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종려나무 숲'에서 보았던 이국적인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 이는 농장 주인인 강명식·지상악 부부다. 예구마을에 살던 부인을 선보러 와서 공곶이에 매료된 강 씨는 12년 후인 1969년 이곳에 터를 잡아 밭을 일구고 나무와 꽃을 심고 가파른 비탈에 계단을 놓았다. 이제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부부는 지금 거제 8경 중 하나가 된 마을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마음씨도 곱다.
김소엽 시인은 "봄은 겨울을 인내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종려나무의 꽃말이 '승리'이듯이 봄날 공곶이에서는 시린 겨울을 이겨낸 뒤의 화사함을 접할 수 있다.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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