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가을, 세계문화유산 왕릉으로 여행가자
한국관광공사 추천 2009년 9월에 가볼만한 곳-조선왕릉
2009-09-02 14:15:47최종 업데이트 : 2009-09-02 14:15:4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한낮엔 곡식과 과일을 영글게 하는 햇볕이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뜨거웠던 여름은 물러가고 이제 가을이 어느새 다가왔다. 이 가을에는 시끄럽고 복잡한 관광지나 유원지보다는 사색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왕릉(王陵)을 찾아가 사색도 하고 아름드리 나무들과 우거진 풀들이 내뿜는 자연 속의 맑은 공기도 마시는 것이 좋을 듯한다.

때마침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왕릉들이 유네스코 세곈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터여서 왕릉답사는 더욱 더 뜻이 깊을 듯 하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9월에 가볼 만한 수원과 서울 인근의 왕릉을 소개한다.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접근성도 편리하므로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면 좋겠다.

사도세자에 대한 '효(孝)' 담은 화성 융.건륭

위치 : 경기도 화성시 태안면 안녕리 

가을, 세계문화유산 왕릉으로 여행가자_1
융.건릉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자락에 단아한 융건릉이 자리한다. 융릉(隆陵)은 조선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조(莊祖, 1735~1762)와 비(헌경황후, 1735~1815)의 합장릉이다. 장조는 이복형인 효장세자(추존 진종)가 요절하고 영조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태어나 2세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서예와 무예에 뛰어나 부왕을 대신해 정무에 임했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뒤주 속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영조는 28세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아들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시호를 사도(思悼)라 했다. '세자를 생각하며 추도한다'는 뜻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도세자로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이다. 

한 많은 아버지의 삶을 애달파한 정조대왕 

원래 사도세자의 능은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에 있었다. 하지만 불행한 삶을 보낸 아버지를 늘 가슴 아파하던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1789년(정조 13)에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다는 수원(현재의 화성)의 화산으로 묘를 옮긴 후 현릉원(顯隆園, 나중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했다. 정조는 아버지 묘소를 같은 격의 어느 원보다도 훌륭히 꾸며 능 주위에 병풍석을 돌리고 혼유석과 팔각 장명등, 문무인석을 세웠으며 융릉에만 소나무 45만 그루를 심었다. 궁궐의 세련된 의장과 최고 석물장인의 솜씨가 엿보인
아버지 무덤 앞에서 정조는 소매가 젖도록 울고, 재실에 들어가 아버지와 영혼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기에 용주사라 이름한 인근 사찰을 원찰로 하였다. 용주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홍살문이 있는데 이는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을 건립해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효행박물관에서는 정조가 효심에서 발원, 보경을 시켜 제작한 '불성부모은중경판'이 있다. 

융건릉, 용주사, 수원화성은 정조가 펼친 마음
 

이어 정조대왕은 화성(華城)을 축조했다. 1794년 1월에 착공해 1796년 9월 10일에 완공했으니 수원화성의 근간에는 효심이 깔려 있다. 아버지 묘소 현릉원을 자주 찾게 되면 행궁이 있어야 했고, 더 나아가 한양에 있는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가진 집권 세력을 견제하고 제거하며 자신의 정치적 꿈을 펼칠 새로운 수도 건설도 필요했다. 성곽 전체길이는 5.52km이며, 4대문을 내고 암문, 수문, 포루, 각루 등 다양한 구조물을 규모 있게 배치하였다. 축성 공사에는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활용하는 등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과 과학기술이 총동원 되었으니 수원화성은 조선시대 성곽 중 가장 과학적이고 치밀하면서도 우아하고 장엄하다. 정조는 낙남헌(落南軒) 뜰에서 문무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새로운 화약무기를 실험했으며, 서장대에 올라 장용영 군사들의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지휘했다. 

정조 22년(1798)에 기록된 '화성능행도'를 보면 정조임금이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창덕궁을 출발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 현릉원에 성묘하고, 수원화성 봉수당(奉壽堂)에서 혜경궁께 진찬례를 연 후 다시 궁으로 돌아오기까지 8일 동안의 일들이 깨알같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혜경궁과 사도세자가 동갑이니 어머니의 회갑은 곧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이기도 했다. 지금은 화성(華城)이 수원시로, 융건릉 용주사는 화성시로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당시는 융릉과 용주사, 수원화성은 같은 영역이었으며 정조의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곧, 정조가 꿈꾸는 도시였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나란히 누운 융건릉
 

정조는 생전에 선친의 묘 곁에 자신의 묘를 써달라 유언을 남겼고, 그에 따라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 옆에 정조임금의 건릉이 자리하고 있다. 융릉은 화산의 서남쪽, 건릉은 서북쪽 기슭으로 융릉과 건릉은 모습이 거의 같다. 능 입구에 홍살문이 서있고 신도 어도와 정자각이 있다. 능은 높은 언덕에 모셔져 있다. 능에는 상석과 망주석, 문인석과 무인석이 있으며 융릉에는 병풍석이 있고 난간석이 없는 대신 건릉에는 난간석이 있으나 병풍석이 없다. 혼유석에는 면마다 둥근 원을 그리고 매난국(梅蘭菊) 무늬를 새겼다. 모두 서향이라 해질 녘의 능 분위기가 그윽하고, 눈이 오면 또 다른 별천지를 보여주니 눈 내린 경치를 '융건백설(隆健白雪)'이라 하여 화성팔경 중 제1경으로 꼽는다. 

제암리, 궁평항, 제부도 등 주변 볼거리 다양
 

더불어 경기도 화성 땅은 볼거리가 많다.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제암리는 삼일운동 때 왜경이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가두어 놓고 불을 질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제암리 삼일운동순국기념탑과 순국선열합동묘를 둘러볼 만하다. 또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에서 공룡알 화석지가 발견된 곳이라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좋다. 제부도도 추천할만한데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바닷길은 하루에 2번 열린다. 지금은 포장공사를 하여 자동차로 통행할 수 있지만 물 때를 잘 알아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썰물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제부도 여행길에는 궁평항도 들려봄직하다. 맛난 조개구이와 더불어 드넓은 갯벌, 아름다운 석양이 기다린다.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화성시청  www.hscity.net 
- 문화재청 융릉관리소  http://hwaseong.cha.go.kr 
- 제암리 삼일운동 순국기념관 www.jeam.go.kr
- 용주사 www.yongjoosa.or.kr
- 궁평항 www.gungpyeong.com 

○ 문의전화
- 화성시청 1577-4200
- 융릉관리소 031-222-0142
- 제암리 3 1운동 순국기념관 031-369-1663
- 용주사 031-234-0040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 1호선 수원역에서 24, 46, 46-1번 버스 이용(40분 소요) 


숲길 너머 만나는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의 능, 홍.유릉

위치: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가을, 세계문화유산 왕릉으로 여행가자_2
홍.유릉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홍릉과 유릉은 500년 조선왕조의 가장 마지막 왕이었던 26대 고종(1852~1919)과 27대 순종(1874~1926)이 모셔진 능이다. 홍릉에는 명성황후(1851~1895) 민씨와 고종이 합장돼 있으며,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의 합장릉이다. 두 능을 합쳐 흔히 홍.유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고종은 1863년 철종이 자손 없이 승하하자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10년간은 대정(大政)을 협찬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흥선대원군이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1873년(고종 10) 11월 친정(親政)을 선포하고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나 정치적 실권은 명성황후의 친인척인 민씨 일족에게 넘어가 세도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1897년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고친 뒤, 왕을 황제라 하여 황제즉위식을 가졌다. 

1907년 제2회 세계만국평화회담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밀사를 파견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 때문에 일본의 협박으로 황태자(순종)에게 양위(讓位)한 후 퇴위하였고,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셨다. 고종이 재위한 44년은 외세의 침입이 잇달았던 민족의 격동기였다. 

순종은 창덕궁 관물헌에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광무 원년(1897)에 황태자가 되었다. 광무 11년(1907)에 고종의 뒤를 이어 창덕궁에서 황제위에 올랐으며, 이후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잡기 위해 애썼으나 재위 4년만인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일본은 순종을 창덕궁에 머물게 하고 단지 이왕(李王)이라 불렀다. 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승하하심으로서 조선왕조 519년 최후의 황제가 되었다. 

왕실의 장례와 능은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었던 유교의 예법을 충실히 따랐으며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왕릉의 석물 배치와 구조 역시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나 당대 왕의 의지에 따라 약간씩의 변화가 있었지만 큰 변동 없이 오랜 기간 반복되었다. 하지만 홍릉과 유릉은 조선의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왕이 아닌 황제라는 칭호로 불린 고종과 순종의 능으로, 역대 왕릉과는 달리 중국 황제의 능제를 따라 조성되었다.  

따라서 이전의 조선 왕릉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는 데, 첫째는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어도가 설치되어 참도가 3개의 단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丁)'자 형태의 정자각이 '일(一)'자형으로 바뀌고 그 이름 또한 침전(寢殿)으로 변경되었다. 셋째는 능상구역의 봉분 앞에 위치하던 석물이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비각의 위치인데, 홍릉의 비각은 정자각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 전나무로 이루어진 아름드리 숲까지 형성

그중 홍살문과 정면의 침전 사이에 설치된 석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능원의 기본 석물인 문무석인과 동물상이 침전 앞 신도로 내려오면서 양과 호랑이 상이 사라지고 대신에 중국 명나라 황제릉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동물상이 등장한다. 우선 침전 바로 앞에 문석인과 무석인이 차례로 마주보고 서 있고, 그 뒤로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이 정렬하고 있다. 양과 호랑이 대신 들어선 기린과 코끼리 상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를 반복하고 있는 유릉에서는 서양식 조각수법이 더욱 많이 반영되었다. 이런 차이점들을 살펴보는 것도 홍릉과 유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홍릉과 유릉 사이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전나무로 이루어진 아름드리 숲까지 형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한 불운의 통치자 고종과 순종.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기울어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두 황제. 역사를 더듬듯 찬찬히 숲길을 걷다보면 그들의 고뇌와 숨결이 어느새 가슴 깊은 곳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밖에도 남양주시에는 조선 7대 왕인 세조와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인 광릉이 자리하고 있으며, 15대 왕이었던 광해군 묘와 6대 왕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가 모셔진 사릉 등이 있다. 

다산 정약용 유적지, 종합촬영소, 세미원 등 볼거리 가득 

'다산정약용유적지'는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생가인 여유당을 비롯하여 선생의 묘,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이 자리한 곳이다.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은 오랜 유배생활 끝에 고향인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던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운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수종사는 다산 정약용의 '수종사기'에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사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그래서 수종사라 한다'고 기록된 사찰이다. 사찰의 규모는 아담한 편이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북한강 풍경이 일품이다. 

또한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체험 공간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판문점세트를 비롯하여, '취화선' '황진이' '스캔들' 등이 촬영된 전통한옥세트와 민속마을세트 등을 볼 수 있다. 영상지원관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기도 하다. 

남양주시에 속한 명소는 아니지만 북한강 양수교를 건너면 바로 우측에 위치한 세미원도 연인이나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자라면 들러볼 만한 곳이다. 2만 9000여 평에 이르는 대단위 단지에 물과 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오후보다는 꽃들이 활짝 피는 오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남양주시청 : http://www.nyj.go.kr 
- 문화재청 홍유릉 관리소 : http://geumgok.cha.go.kr
- 남양주종합촬영소 : http://studio.kofic.or.kr
- 수종사 : http://www.sujongsa.com
- 세미원 : http://www.semiwon.or.kr 

○ 문의전화
-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 031)590-2064 
- 문화재청 홍유릉 관리소 : 031)591-7043
- 남양주종합촬영소 : 031)579-0605
- 수종사 : 031)576-8411
- 세미원 : 031)775-1834 

○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금곡역(경춘선), 하루 11회 운행, 35분 소요. 금곡역에서 홍․유릉까지 도보로 5분 거리 * 문의 : 철도공사  1544-77888, 1588-7788 / http://www.korail.com 

[버스 / 홍유릉 정류장 하차]
청량리 : 일반버스(2227, 30, 65, 165), 좌석버스(9201, 9205, 330-1, 765, 3300)
면목동 : 일반버스(2231)
강변역 : 일반버스(9-3)
잠실역 : 좌석버스(9202, 1115)
당고개 : 일반버스(10-5)
서울역 : 좌석버스(9205)
길동 : 일반버스(23) 


조선왕조 500년을 이어온 왕릉전시장, 동구릉

위치: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가을, 세계문화유산 왕릉으로 여행가자_3
동구릉(건원릉)

동구릉에는 태조의 건원릉부터 제24대 헌종의 경릉까지 한양 동쪽에 총 9기의 능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40기 중에서 22%가 동구릉에 몰려 있는 이유는 이곳이 풍수지리상 명당이고, 선조들과 함께 묻히고 싶어했던 역대 왕들의 염원 때문이다. 영조의 '원릉'이나 헌종의 '경릉'에 올라 주변 산세를 살펴보면 문외한이라도 좌청룡 우백호가 훤히 잡히고, 왕이 머물렀다고 하는 왕숙천이 아늑하게 흐르며, 정면으로는 검단산이 아른거려  완벽한 풍수지리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조선왕조 500년 능제의 시원이자 기준이 되는 능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다. 고려의 찬란한 불교 석조예술을 이어받아 조각이 섬세하고 화려하며 다른 능에서는 보기 힘든 신도비까지 볼 수 있다. 봉분 위는 뾰족한 억새가 자라고 있는데, 태종이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한 아버지 태조의 뜻을 받들어 함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와 봉분을 덮어주었다고 한다. 영조 능인 원릉은 왕의 치세를 보여주듯 규모도 크고 힘이 느껴지며, 선조 능인 목릉은 전쟁을 겪어서인지 투박한 석조물을 보여주고 있다. 왕의 일생을 보여주듯 문인석, 무인석의 다양한 표정을 감상해도 좋고, 봉분을 지키는 수호신인 호랑이와 양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선조임금과 왕비, 계비가 각각 3개의 언덕 위에 따로 모셔진 것이 특징인 목릉은 10월 말까지 능원을 개방해 석물을 가까이 볼 수 있다. 

한 분만 모신 단릉, 두 분을 따로 모신 쌍릉, 산줄기를 달리해 두 분을 모신 동원이강릉, 두 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 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 등 동구릉은 다양한 능의 형식을 볼 수 있어 '조선왕조 500년의 왕릉전시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9기의 능은 제각각 사연과 곡절, 애틋한 사랑이야기까지 간직하고 있어 문화유산해설사의 실감나는 해설을 곁들인다면 유익한 왕릉답사가 될 것이다.(하루 3차례 10시, 1시, 3시, 1시간 30분 소요) 

과천의 서울대공원만큼이나 넓은 동구릉은 경내가 거대한 산소통이라고  부를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새벽 6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숲 산책을 하겠다면 이른 시간에 찾는 것이 좋다. 경릉 뒤편 자연학습장은 동구릉의 숨은 볼거리로,  3.5km 산책로를 따라 소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 등이 아름드리 숲을 만나게 되는데 끝자락에는 야생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다.(이 산책로는 5월 1일부터 11월 3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야생화단지, 고구려대장간마을, 아차산유적 박물관, 곤충 생태관 등도 볼만

드라마 '태왕사신기' 가 촬영되었던 고구려 대장간마을은 담덕의 집, 말갈.거란족의 집, 우물가 등을 갖추고 있다. 지름 7m의 대형 물레방아와 화덕을 가진 고구려 제철소에서는 쇠를 녹이고 담금질하는 공정을 볼 수 있다.
아차산유적박물관에는 아차산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류와 철기류를 감상할 수 있다. 대장간마을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는 태왕사신기 촬영시 우연히 발견된 사람 형상의 바위인 '아차산 큰바위 얼굴'을 볼 수 있다. 위엄이 풍기는 묵직한 분위기는 흡사 장군의 얼굴을 닮았다. 제4보루성과 아차산성까지는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아 산책 삼아 다녀오기 좋다. 구리경찰서 앞에는 관모를 쓰고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가 새겨진 알을 들고 있는 광개토태왕 동상과 실물 크기의 광개토대왕비가 서 있어 고구려의 웅혼함을 배울 수 있다. 

혐오시설로 알려진 생활폐기물소각장을 친환경시설로 탈바꿈한 구리타워에 오르면 한강과 주변 산줄기, 도시의 야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지상 100m 높이의 전망대와 한바퀴를 돌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회전레스토랑이 있다. 곤충생태관에서는 장수풍뎅이를 비롯한 살아있는 곤충과 표본을 볼 수 있으며, 신재생에너지홍보관에서는 태양에너지로 곤충모형을 움직여보는 '태양전지벌레 레이스', 태양열의 뜨거움을 손으로 느껴보는 체험 , 바람을 에너지로 내는 새소리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9월이 되면 구리 한강시민공원은 온통 코스모스밭이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한꺼번에 춤추는 코스모스의 군무는 장관이다. 수세미 조롱박이 달려 있는 넝쿨터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공습지, 꽃 산책로, 강변 자전거 도로까지 갖추고 있다. 

<여행정보>
○웹사이트 주소
-동구릉 홈페이지: http://donggu.cha.go.kr
-문화재청 조선왕릉 홈페이지:http://royaltombs.cha.go.kr/
-구리시청홈페이지:www.guri.go.kr 

○문의전화
- 동구릉관리사무소:(031)563-2909
- 구리시청문화예술과:(031)550-8353
- 동구릉 문화관광해설예약:(031)550-2345(해설 10시, 13시, 15시)
- 고구려대장간마을: (031)550-2363(아차산 고구려 유적답사 사전예약)
- 구리타워: (031)550-2880 

○ 대중교통 정보
1. 지하철 및 버스
[1호선]청량리역, 7호선 상봉역.  202, 88번 시내버스(청량리에서 30분 소요)
[2호선] 강변역. 1, 1-1, 9-2 구리방향 시내버스(40분 소요)      
[중앙선] 구리역. 마을버스 2, 6번(10분 거리)


솔숲 울창한 왕릉을 거닐며 숨겨진 보물찾기, 서오릉,서삼릉

위치: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 30-1 & 고양시 원당동 산 37-1

가을, 세계문화유산 왕릉으로 여행가자_4
서오릉(창릉)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동구릉을 비롯한 수도권에 위치한 왕릉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중에서도 교통체증을 피해 아이들과 호젓이 하루를 쉬고 싶다면 바로 고양시의 서삼릉과 서오릉 당일 나들이 코스가 좋다. 서오릉과 서삼릉은 구파발에서 가깝고 원당 종마목장과 아름식물원 등 인근에 소풍처럼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가득하다. 

왕은 후계자로 결정이 되면서부터 왕의 자리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반대로 가장 많은 규칙과 통제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이다.
왕릉도 이런 왕의 운명과 비슷하다. 왕릉이라고 해서 모두 웅장하고 멋진 것은 아니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나 정치 상황에 따라 왕릉도 그 모습이 달라졌다. 그래서 왕릉은 그 시대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왕릉은 유교와 그 예법에 근거하여 시대에 따라 다양한 크기, 문인과 무인공간의 구분, 석물의 배치, 기타시설물의 배치 등이 특색을 띠고 있다. 특히 왕릉의 석물 중 문인석, 무인석의 규모와 조각양식 등은 시대별로 변하는 사상과 정치사를 반영하고 있다. 왕에 대한 사후의 평가와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문화유산인 셈이다.

서오릉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 왕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세조의 왕세자였던 의경세자의 능인 경릉을 조성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자 그 터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고 추천되었고, 세조는 친히 나아가 살펴보고 능지를 정했다. 그 후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인 창릉이 만들어졌고, 세 번째로 숙종의 비 인경왕후의 능인 익릉이 조성되었다. 숙종과 비 인현왕후의 쌍릉과 제2계비 인원왕후의 단릉이 모셔진 명릉이 네 번째로, 마지막 다섯 번째로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의 홍릉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왕과 왕비의 능 5기가 군을 이루자 '서오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오릉에는 왕과 왕비릉 외에도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의 순창원과 1970년 경기도 광주에서 이장해온 경종의 생모 장희빈이 묻혀있는 대빈묘가 있다.

우거진 소나무 숲, 넓은 잔디밭 소풍 제격

서오릉은 평지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산책하기가 좋고 능 중간에 벤치와 휴식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소풍을 오는 여행객들이 많다. 왕릉 주변에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자리 깔고 가족끼리 시간 보내기에 제격이다. 또한 명릉은 왕릉 위로 올라가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서울에서 가까워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 쉬운 것도 장점이다. 더불어 문화해설사의 설명 시간까지 맞춘다면 금상첨화다. 서오릉은 1일 3회(10:30, 13:00, 15:00)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서오릉과 인접해 있는 서삼릉은 가는 길이 한적하고 호젓하다. 중종 32년(1537)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인 희릉이 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중종의 능인 정릉이 한때 이 능역에 있었다가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인종과 비 인성왕후 박 씨의 효릉이 조성되었고, 고종 원년(1864) 철종과 철인황후 김씨의 능인 예릉이 들어서면서 '서삼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삼릉에는 3기의 왕릉뿐만 아니라 성종의 폐비 윤 씨의 회묘, 소현세자의 소경원, 장조의 아들 의소세손의 의녕원,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효창원,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묘와 조선 말기까지 역대 후궁을 비롯하여 대군, 군, 공주, 옹주 등의 왕실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에는 일본이 전국 각지에 있던 태조부터 순조까지 임금 21위와 대군, 세자, 공주 32위 등 모두 53위의 태실을 파내와 이곳에 모아 태실을 만들었다. 조선의 민족정기를 훼손할 목적으로 일(日)자형 담장을 두르고, 신사참배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 공원화했다. 담장은 1996년 철거되었고, 현재는 54기의 대비석이 세워져 있다. 서삼릉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화로 미리 예약하면 어느 때라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허브랜드, 원당종마목장, 테마동물원주주, 중남미문화원 들러보세요

서오릉 보다 서삼릉 주변은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 많다. 농협대학과 원당종마목장은 서삼릉보다 더 유명한 인기 여행지다. 원당종마목장에서 초록빛 향연을 벌이는 넓은 초지 위에 한가로이 뛰노는 말들의 모습은 더없이 여유롭다. 목가적인 풍경에서 유유자적 나들이를 즐기기에 좋다. 탁 트인 초원은 그 자체가 편안함과 안정을 주며, 한가롭게 몸을 풀고 있는 경주마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이런 여유와 편안함은 연인과의 데이트에 안성맞춤이다. 높다란 은사시나무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자동차는 농협대학에 세우고 은사시나무길까지 1km 정도의 길을 걷는 것이 좋다. 낭만적인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공원 같은 캠퍼스 농협대학도 목장 주변의 휴식처. 국내 캠퍼스에서는 보기 드물게 운동장이 잔디로 되어 있다. 또한 정문에서부터 시원하게 뚫려 있는 도로 옆에는 키 높은 은행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어 마치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종마목장이나 서삼릉에선 취사가 금지되고 음식을 팔지 않으므로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농협대학 인근에 위치한 허브랜드는 즉석에서 허브 화분을 구입할 수도 있고, 각종 허브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배다리술박물관은 전통주를 빚는 과정과 각양각색의 전통주도 시음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테마동물원 주주와 중남미문화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고양시청 : www.goyang.go.kr
- 문화재청 서오릉관리소 : goyang.cha.go.kr
- 배다리술박물관 : www.baedari.co.kr
- 원당허브랜드 www.wondangherbland.co.kr
- 중남미문화원 www.latina.or.kr
- 테마동물원 주주 www.themezoozoo.com

○ 문의전화
- 고양시청 문화예술과 : 031)8075-3371
- 서오릉 : 02)359-0090
- 서삼릉 : 031)962-6009
- 원당허브랜드 031)966-0365
- 배다리술박물관 : 031)967-8051
- 중남미문화원 031)962-9291
- 테마동물원 주주 031)962-4500

○대중교통 정보
<기차 및 버스>
서울역 도착 - 3호선 대화행 - 녹번역 하차 및 삼송역 하차
<서오릉>
-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 9701번, 702A번 버스 이용
- 지하철 3호선 원당역 3번 출구, 9701번 버스 이용
- 지하철 6호선 구산역 1번 출구, 9701번 버스 이용
<서삼릉>
- 지하철 3호선 삼송역 5번 출구, 마을버스 1번 이용


강남 도심에 흐르는 조선 왕조의 역사, 선.정릉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5-4 


초현대식 빌딩들이 즐비한 강남 번화가에서 4, 5백년 전에 조성된 조선 왕조의 왕릉이 온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지하철 2호선에 선릉역이 있다는 건 잘 알아도 그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자리한 조선의 왕릉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단 매표소를 통과하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곧장 북쪽 방향으로 잡으면 선릉과 정현왕후릉으로, 오른편의 동쪽으로 향하면 재실을 지나 정릉으로 가게 된다. 선릉과 정릉, 어느 능부터 찾아가건 두 능역을 이어주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숲길 중간에 정현왕후릉이 있으므로 세 개의 능을 모두 만나보는 것이 올바른 답사여행이다. 

선릉은 9대 성종 임금과 제2계비인 정현왕후 윤씨를 모신 능이다. 성종의 능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둘려있고 정현왕후의 능에는 난간석만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이 같은 능역 안에 있지만 언덕을 달리하는 배치라서 '동원이강릉'의 형태를 보인다. 동원이강릉은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각기 다른 언덕에 단릉 형태의 봉분과 상설을 배치한 형태를 뜻한다. 

성종은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훗날 덕종으로 추존)의 둘째아들이다. 장인인 한명회와 할머니인 세조왕비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13세에 왕위에 올라 25년 1개월 간 통치하고 원비 외에 11명의 계비를 두었다. 자녀로는 16남 12녀를 두었다. 성종 대에는 국가권력이 안정되었으며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악학궤범 등 많은 서적이 간행됐다. 그러나 1494년 12월 24일 38세의 젊은 나이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성종의 장례는 1495년 4월 6일 거행됐다.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는 자식을 두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떴고 제1계비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이며 제2계비 정현왕후는 1480년 왕비에 책봉됐다. 자식으로 중종과 신숙공주를 두었다. 정현왕후는 성종과 달리 비교적 장수해서 중종 25년(1530) 68세 때 경복궁에서 승하했고 성종의 능 동쪽편에 묻혔다. 

정릉은 성종의 장남인 중종의 단릉이다. 연산군이 반정세력에 의해 축출되자 1506년 9월 조선 왕조 제11대 왕위에 올라 38년 2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재임 기간 중 소학, 이륜행실, 속동문선, 신동국여지승람 등이 간행되었다.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단경왕후 신씨는 연산군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폐위됐다. 장경왕후 윤씨(인종의 생모), 문정왕후 윤씨(명종의 생모) 등 2명의 왕후와 7명의 후궁을 두어 9남 11녀를 보았다. 1544년 승하 후 경기도 고양시의 서삼릉 가운데 희릉에 묻혔다. 

그러나 명종 17년(1562)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지리를 이유로 들어 중종의 무덤은 희릉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장되었다. 문정왕후가 중종 옆에 묻히길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허나 정릉 앞의 정자각 주변이 장마 때면 물이 차는 등 역시 풍수가 좋지 않아서 문정왕후는 결국 중종의 정릉과 떨어져 태릉에 홀로 안장되고야 말았다. 

조선의 왕릉 가운데 왕과 왕비가 서로 떨어져서 왕의 능만 따로 조성되어 있는 곳은 중종의 정릉 외에 태조의 건원릉(경기도 구리시), 단종의 장릉(강원도 영월군) 뿐이다. 

선정릉에는 소나무 외에 산벚나무, 귀룽나무, 돌배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조팝나무, 산사나무, 병꽃나무, 보리수나무, 박태기나무, 쥐똥나무, 백당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다. 각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 있어 하나하나 확인하며 산책하는 것도 선정릉 답사의 묘미이다. 특히 재실을 지나 정릉의 정자각으로 가는 숲길에는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눈여겨봄직하다. 오리나무는 '길을 가는 나그네가 얼마나 걸었는지 거리를 알 수 있게 5리마다 심은 나무'라고 이름표의 설명문이 들려준다. 또 이 나무는 나막신과 하회탈의 재료이며 열매나 껍질은 붉은 물감의 재료로 이용됐다고 한다. 

선정릉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30분 등 하루 두 차례에 걸쳐 문화재해설 안내 시간을 갖는다. 지도위원의 안내를 받으며 선릉의 능침까지 골고루 답사할 수 있다. 

선정릉 입장시간은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관람은 오후 9시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관람은 오후 9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대인 1천원, 소인 5백원, 대인 20인 이상 및 청소년 10인 이상 단체는 20% 할인. 

인근에 봉은사와 포스코센터, 코엑스 아쿠아리움 등 볼거리 풍부

한편 선정릉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봉은사라는 문화유적지가 있으므로 왕릉 답사와 병행하면 좋다. 봉은사는 코엑스빌딩 등 고층빌딩이 즐비한 삼성동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도시민들에게 잠시나마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해주는 사찰이다.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에 연회국사가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봉은사로 개명된 시기는 조선 연산군 때의 일이다. 성종의 셋째부인이며 중종의 친어머니인 정현왕후 윤씨는 연산군 4년(1498)에 인근에 있는 성종의 능(선릉)을 보살피기 위해 능의 동쪽 편에 있는 견성사를 중창하면서 원찰로 삼고 명칭도 봉은사(奉恩寺)로 고쳤다. 중종 25년(1530) 승하 후 선릉 옆에 묻히자 봉은사는 원찰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명종 즉위 후에는 수렴청정에 나선 문정왕후에 의해 봉은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문정왕후는 명종 5년(1550)에 봉선사를 교종수사찰, 봉은사를 선종수사찰로 정하고 보우스님을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면서 불교를 중흥시킨다. 이후 승과가 부활하고 봉은사는 선정릉의 정릉(중종의 능) 자리에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각들이 전소되는 비운을 겪었고 숙종 18년(1692) 크게 중창되었지만 1939년 대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또 다시 불타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건물들은 이후 새롭게 지어진 것들이고 따라서 봉은사에서 가장 연륜이 오래 된 건물은 판전(板殿)이다. 현재 이 전각에는 화엄경, 유마경, 초발심자경문 등 3천 4백여 점의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판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선생이 71세 때(1856) 병중에 쓴 마지막 글씨로 유명하다. 

선정릉 주변에는 예술의 향기에 취해볼 공간들도 여러 군데 있다. 포스코센터(강남구 대치4동)의 포스코미술관과 포스코스틸갤러리, GS타워(강남구 역삼동)의 LG아트센터, 코스모타워(강남구 대치동)의 KT&G 상상아트홀, 코엑스몰의 메가박스 등에 가면 미술작품을 만나보거나 뮤지컬, 오페라, 클래식음악회, 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라면 수중동물원인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우리 물고기, 아마존 열대우림, 키즈 아쿠아리움, 세계의 바다, 오션 킹덤, 해저터널, 해양포유류존, 터치 풀, 딥 블루 씨, 펭귄들의 상상놀이터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위인의 발자취를 살펴볼 겸 도시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곳은 도산공원이다. 안세병원 앞 사거리와 학동사거리 중간에서 성수대교 남단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편에 도산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도산기념관과 도산 안창호선생의 동상, 도산선생과 부인 이혜련여사의 묘, 어록비 등이 숲과 산책로 사이에 산재한다. 주변 시민들은 물론 강남 산책에 나선 뚜벅이족들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어준다. 도산기념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 휴관. 입장료 없음. 

<여행정보>
○관련 웹사이트 주소
강남구청 www.gangnam.go.kr
선정릉 http://seonjeong.cha.go.kr
봉은사 www.bongeunsa.org
코엑스 아쿠아리움 www.coexaqua.co.kr 

○문의전화
서울특별시 강남구청 문화체육과 관광팀 02-2104-1757
선정릉 관리사무소 02-568-1291
봉은사 02-3218-4800
코엑스 아쿠아리움 02-6002-6200
포스코미술관 02-3457-1665
LG아트센터 02-2005-0114
상상아트홀 02-3404-4311 

○대중교통 정보
<선정릉>
지하철 : 2호선, 분당선 선릉역 8번 출구
버스 : 6411, 3219, 472 등 

<봉은사>
지하철 : 2호선 삼성역 6번 출구, 7호선 청담역 2번 출구
버스 : 361, 680, 143, 146, 301 등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