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과 봄꽃 아름다운 산성을 걷자
봄철 산행과 역사 공부 겸한 수원 인근 산성기행
2009-04-17 16:00:43최종 업데이트 : 2009-04-17 16:00:4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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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연한 봄이다. 어디로 갈까? 이번 봄에는 날을 잡아 수원 인근 산성을 찾아보도록 하자.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의 요충이었던 수원 인근에는 상상 밖으로 산성이 많으므로 우선 접근성이 편하고 잘 주변 풍경이 좋은 곳부터 선정해 사전 지식을 공부한 다음 하나씩 다녀오면 어느 틈에 향토사학자나 성곽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독산성(오산시) ![]() 독산성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 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정번호 : 사적 제140호 -지정일 : 1964년 08월 29일 -시대 : 삼국시대 -주변먹거리:정호농장 (031-372-3551), 선녀와 나뭇꾼 (031-372-2440), 솔뫼마을 (031-372-4446) -주변관광지:오산 금암동 지석묘군, 외삼미동 지석묘, UN군 초전기념비, 보적사, 오산시 궐리사, 궐리사성적도목판 ◆당성(화성시) ![]() 당성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길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는 동문·남문·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성의 내벽은 흙으로 쌓고, 외벽은 돌로 쌓았다.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하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소유자 : 문화재청 ◆망이산성(안성시)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해발 472m의 망이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낮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이 성은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중간 부분의 3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동서로 뻗은 계곡부를 막아서 쌓은 표곡식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유자 : 산림청 ◆파사성(여주시) ![]() 파사성 해발 230m의 나지막한 야산인 파사산. 파사산 정상에 올라서면 동서남북 모든 곳이 탁 트여 있고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형성돼 있는 마을들과 그 마을들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들의 환상적인 풍경에 탄성을 금할 수가 없다.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파사성은 성벽 등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며, 둘레는 935.5m 정도이고 성벽 중 최고 높은 곳은 6.25m나 되나, 낮은 곳은 1.4m 되는 곳도 있다. 삼국시대 축성되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란이 일어났을 때 유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군총익인 의암이 승군을 동원하여 쌓은 둘레 1100보의 성첩을 중수한 기록이 있다. -지정번호 사적 제251호 ◆설봉산성(이천시) -지정번호 : 국가사적 제423호 ![]()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남북을 수호하는 산성으로 백제 온조왕 13년에 축성되었고, 신라영역이 된 후 문무왕 12년에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일장성으로 불려졌다. 이 곳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지금도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북쪽을 보면 남한산성 아래로 초기 백제의 몽촌토성과 한강 건너 고구려의 아차산성, 그리고 그 뒤로 북한산성이 거의 남한산성과 일직선상으로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어 한눈에도 고대로부터 군사 전략상의 요충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조 광해군 이후 이괄의 난을 치른 후 청나라 세력의 위협에 대비,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 인조4년에 준공하였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인조가 이곳에서 45일 동안 항전하다 항복한 역사의 연장이기도 하다. 수어장대가 위치한 전상은 해발 460m이며, 성은 봉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고, 성곽의 둘레만도 11.76㎞에 달하며, 산성 내 면적만도 80만여 평이다. 유사시 임금이 이어할 수 있는 행궁을 비롯해 종묘, 사직, 관아, 재옥, 종각 등 없어진 것이 차례로 복원되고 있다. 산성축성 전부터 망월사, 옥정사 등 9개의 사찰이 있었으나 일제시 폭파되었다가 현재 망월사 등 4개의 사찰이 복원되었다. 성곽이 국가사적 57호로 지정되었고, 수어장대를 비롯한 6점의 도지정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남한산성은 불국토이기도 하지만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 개원사 : 인조 2년에 세워졌으며 전국에서 산성 축성과 방어를 위해 동원된 승려들은 물론 전국 승려들을 총괄하던 지휘소. - 현절사 :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고도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처형을 당한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와 김상헌, 정온의 위패를 모신 곳. - 연무관 :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 - 침괘정 : 백제 온조황의 왕궁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 건물은 조선 영조시대에 중수했으며 무기제작의 사무를 관장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 지정번호 : 사적 제57호 - 지정일 : 1963년 01월 21일 - 시대 : 삼국시대 [축성시기] - 본성 : 인조4년(1626) - 외성 : 숙종 - 구성 : 본성,외성(봉암성,한봉성), 신남성 [규모 및 시설] - 총연장 : 본성(9.05Km),옹성포함(11,755Km) - 성곽의 높이 : 3-7.5m - 시설 : 장대4(수어장대만 현존),접문4,옹성5,봉화대2,암문16 [등산코스] - 성남시 → 남문 → 수어장대 → 서문- → 거여동(3.5km, 2시간 30분) - 광지원 → 동문 → 장경사- → 벌봉(4km, 3시간) [드라이브코스] - 구의동 → 잠실대교 → 송파대로 → 3번국도 → 약진로 → 남한산성(40분) - 반포 → 경부고속도로 → 양재인터체인지 → 세곡동 → 대왕교 → 약진로 → 남한산성(50분) - 청량리 → 망우동 → 구리시 → 하일인터체인지(중부고속도로) → 경안인터체인지 → 광지원 → 남한산성(60분) <사진 및 자료 출처/경기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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