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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밥상은 또 다른 추억을 낳고
추억의 도시락과 연주암의 점심공양
2014-04-14 21:42:52최종 업데이트 : 2014-04-14 21:42:52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가득 미소가 흐르며 행복해진다. 입안에 느껴지는 음식의 향기로움과 함께 먹는 음식에 얽힌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입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풍성한 추억과 함께 밥상이 행복해지기도 한다. 요 며칠사이 맛있는 점심을 연달아 먹었다. 

회사식당에서 점심으로 제공된 추억의 도시락과 관악산 연주암의 점심공양이다. 먼저 추억의 도시락이야기다. 노란 양은도시락에는 묵은김치볶음, 멸치볶음, 옛날 소시지전이 한쪽에 자리 잡고, 밥 위에는 계란프라이가 당당하게 올라 앉아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그야말로 추억의 도시락이다. 눈 내리는 겨울날, 교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난로위에 차곡차곡 올려 놓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꺼내 와서 쓱쓱 비벼먹었던 바로 그 도시락이다. 

추억의 밥상은 또 다른 추억을 낳고_1
보는것만으로도 즐거운 양은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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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밥상은 또 다른 추억을 낳고_2
추억의 밥상은 또 다른 추억을 낳고_2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차곡차곡 쌓여있는 양은도시락을 보면서 벌써 입안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하고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밥과 반찬을 섞어 쓱쓱 비빈다. 앞자리의 동료는 도시락을 들고 열심히 흔들어댄다. 잠시 후, 도시락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보는데 도시락속의 내용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채 그대로다. 
흔드는 것도 요령이 필요한건지 아니면 내용물이 너무 많아서 서로 섞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인지 애써 흔들어댄 보람도 없이 담아 놓은 그대로다. 동료는 모두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 뒤, 도시락을 흔드느라 팔에 힘이 빠져 숟가락 들 힘도 없다면서 그래도 쓱쓱 비벼 참 맛있게 먹는다. 

고기반찬이 들어간 것도 아니요, 고급스러운 재료가 들어 간 것도 아니건만 그날 점심, 회사식당에는 여기저기 웃음꽃이 피어나는 정말 즐거운 모습의 그림이 펼쳐진 날이다. 먹는다는 것이 항상 즐겁고 감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회사구내식당의 경우, 까다로운 직원들의 입맛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해서 자주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짜다고 불만, 싱겁다고 불만,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일 때가 많다. 
나는 대체로 맛있게 먹는 편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데 별 재주가 없는 터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게 먹는다. 

이날의 점심메뉴인 추억의 도시락은, 나같이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뿐 아니라 평소 음식에 불만이 있던 직원들에게도 환영받았던 성공작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노란 양은도시락에 담겨진 밥을 먹으면서 초등학생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의 도시락이라고 생각 했던 걸까. 정작 학교 다닐 때는 노란 양은도시락에 밥을 싸가지고 다닌 적은 한 번도 없다. 더구나 도시락 하나에 밥도 담고 반찬도 담아 비벼 먹어 본 기억도 없다. 

양은도시락이긴 하지만 뚜껑에 예쁜 꽃그림이 그려진 도시락에 반찬통은 물론 따로 있었으며 김치는 국물 때문에 작고 앙증맞은 유리병에 담아 가지고 다녔었다. 이렇게 나름대로 반찬이 섞이는 걸 예방하지만 김치 국물이 흘러 책가방 안에 있던 교과서와 공책들이 빨갛게 물들었던 적은 있다. 
지금의 추억의 도시락과는 조금 다른 도시락을 먹었지만, 도시락에 얽힌 아름다운 기억들 때문에 일부러 도시락에 밥을 담아 먹으며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 같다. 

도시락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학창시절의 그리운 추억들과 친구들, 망아지처럼 뛰어놀던 아름다운 시간들,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과 다정한 목소리까지 도시락 하나로 인해 줄줄이 고구마줄기처럼 달려 나온다. 

추억의 도시락과 함께 또 한 번의 맛있는 점심은 관악산에 있는 연주암 이라는 절에서 먹은 점심공양이다. 절에 다니는 불자도 아니면서 절밥이 먹어보고 싶어서 염치불고하고 얻어먹은 점심이다. 대부분의 절에서는 점심시간이면 절에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점심을 제공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쯤은 먹어보고 싶었던 절밥이다. 

추억의 밥상은 또 다른 추억을 낳고_3
연주암의 점심공양.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등산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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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밥상은 또 다른 추억을 낳고_4
콩나물무침과 무가 재료의 전부임에도 꿀맛같은 점심식사였다.
 
마침 관악산 산행을 하던 날, 연주암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공양간으로 찾아가봤다. 휴일에는 한 시간씩 줄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지만 혹시나 하고 들여다본 공양간은 의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행운도 함께 했다. 
절에서 주는 밥은 그릇 하나에 반찬을 모두 담아 비며먹는다고 들었는데, 역시 연주암의 점심도 비빔밥이다. 큼지막한 비빔밥용 그릇에 반찬과 밥, 고추장이 들어가 있고 연한 된장국이 같이 나오는 게 식사의 전부다. 

비빔밥 안에 들어간 재료도 간단하다. 콩나물 무친 것과 동치미 무를 채 썰어서 담은 것 그리고 고추장이 전부다. 밥의 양은 내가 먹기에는 약간 많은 편이다. 밥은 담아주기 때문에 많이 먹는 사람과 적게 먹는 사람 중, 많이 먹는 사람 쪽으로 기준을 맞춘 것 같다. 

음식을 먹을 때는 남기면 안 되지만, 특히 절에서의 음식은 남기면 안 되는 것이, 자신이 먹은 그릇은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해서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자리에 앉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아저씨께 더 드시겠느냐고 물어보니 그릇을 내민다. 절반을 덜어주고 그제야 먹기 시작한다. 

들어간 재료가 거의 없는데도 참 맛있다. 산행을 하고 난 후의 식사라 더 맛있기도 하지만 절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으로 대접하는 음식이라 더 맛있는 것 같다. 
음식을 먹는 것은 단지 음식만을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에 얽힌 추억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까지 함께 먹기 때문에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두 번의 맛있는 점심은 나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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