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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모시고 간 해우재와 수원미술전시관
효도, 어렵지만 가까운 곳에 있다
2014-04-01 15:20:24최종 업데이트 : 2014-04-01 15:20:24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수원엔 볼거리가 많아요. 오늘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일주일 넘는 동안 병원 치료로 답답한 생활을 하던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집을 나섰다. 3월 마지막 날인데 4월 꽃이 거리 곳곳에서 우리 가족을 반기고 있다. 목련은 활짝 피었고, 벚꽃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많이 걸을 수 없어 화성행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고민하던 차에 문득 떠오른 명소, 해우재 였다. 명절 연휴에 시댁 식구들과 함께 찾아본 경험이 있어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산뜻한 봄바람이 부는데 햇살은 뜨거운 여름빛이다. 작고 아담한 공원을 걷기엔 안성맞춤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간 해우재와 수원미술전시관 _1
해우재?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꼼꼼히 읽어보신다.

"여기 애가 똥싼다~"
"이불에 오줌을 쌌는지 키를 뒤집어 쓰고 어딜 가나?
"예전 공중 변소가 이랬어. 줄을 서서 오랫동안 기다리는데 설사난 사람은 얼굴이 노랗게 떠서 난리도 아니었단다."
"똥 돼지 봐라~제주도에서 본 게 여기 있네~"

소공원 안에 도착하자 부모님은 여기저기 동상들을 보고 재미있어 하셨다. 가는 길에 간략하게 해우재를 소개하니 이해를 못하신다. 변기 모양의 집이라는 설명을 덧붙여도 설마 하신다.
막상 해우재 건물에 다다르자 신기하신 듯 여기저기 둘러보며 두 분은 예전 추억을 나누셨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추억담을 쏟아내시고 즐거워하셨다.

아픈 다리로 일은 하시면서 가까운 곳이라도 구경가려하면 마다하신 부모님이셨다. 뒤늦게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 구석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나의 어릴 적 화장실은 코를 막고 들어가야 하는 재래식 변소였다. 행여 빠질까 조심스러워 볼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밤마다 들려준 빨강 귀신 파랑 귀신이야기는 더 더욱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똥지게를 짊어진 아저씨를 만난 날엔 밤에 무서워 바깥출입을 할 수도 없었다
명절 음식을 과하게 먹고 배탈 난 밤엔 변소 밖에 보초를 세워두고 볼 일을 봤다. 보초로 나선 아빠는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화장실의 역사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오늘 해우재에서 부모님과 함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많이 웃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간 해우재와 수원미술전시관 _2
"여보 여기봐요~똥 나와요~"

수원엔 깨끗하고 근사한 화장실을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다. 타 지역 친구들이 한결 같이 입을모아 칭찬을 한다. 반딧불이 화장실 앞에서 등산모임 멤버를 만나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편하다. 볼일도 보고 잠깐 쉬었다가 광교산에 오르는데 그만한 장소도 없다. 이렇게 누릴 수 있게된 역사가 해우재에 모두 소개되어있다.

부모님은 말로만 듣던 명소를 직접 방문해보시고 만족해 하셨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지인들에게 자랑하시겠다면서 안내 책자도 챙기셨다
해우재를 나와 다음 갈 곳을 고민해본다. 많이 걷지도 않고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좋은 곳은 없을까? 수원 미술 전시관이 제격이었다. 가깝고 전시내용이 많이 변경되어 새로운 그림을 관람할 기회가 되었다.

"이번엔 그림 보러 갈게요. 엄마가 좋아하는 꽃그림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수묵화도 있어요."
미술관이 초행길이라 별 반응이 없다. 지금껏 부모님과 느긋하게 그림을 보고 이야기 나누어 본 경험이 없어서다. 그동안 아파야 딸집에 올 수 있었고, 치료가 끝나면 곧장 일하러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게 일상생활이었다. 치료가 길어진 게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간 해우재와 수원미술전시관 _3
수원미술전시관에서 그림에 빠져드는 부모님.

미술관엔 관람객이 적었다. 한적한 탓에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이 그림은 사진인줄 알았다. 어쩜 꽃이 살아있는 것 같구나"
한참을 머물며 꽃그림에 빠진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신다. 슬쩍 손을 뻗어 만져보시기도 하고 각도를 달리해 이렇게 저렇게 바라보신다. 멀찌감치 떨어져 계신 아버지는 추상화 앞에서 생각에 잠기셨다. 작품 감상보단 조용한 공간을 더 즐기시는듯했다

전시관 한쪽엔 유명 가수가 그림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이 가수는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것 같구나."
"그러게요. 그림마다 높은음자리표가 많고 기타를 소재로 한 것 도 눈에 띠여요."
부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전시관 앞에 놓인 화환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는 어떻게든 화분하나 가져가고 싶은 속마음을 내보여 기자를 놀라게 했다. 예전에도 부녀사이에 꽃 욕심이 문제가 되곤 했다
길거리에 핀 꽃도 뽑아다가 집 화분에 옮겨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는 오늘도 과욕을 부리신다. 이럴땐 얼른 장소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설득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까 종종 걸음으로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몇 년 만에 부모님과 외출해서 얻은 시간은 짧지만 소중했다. 그동안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아프다는 핑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한나절이면 충분한데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이 미뤄 온 듯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머니는 해우재에서 보았던 아기자기한 동상들을 떠올리며 여러 번 말씀하셨다. 많이 흡족해 하시는 모습이 병원 치료의 고달픔을 상쇄하는데 일조한 것 같았다. 효도..어렵지만 가까운 곳에 있다.

해우재 수원미술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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