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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일 하면서 독서모임에 나오는 청년
적은 인원이 모여도 풍성한 만남은 얼마든 가능하다
2014-03-30 17:42:04최종 업데이트 : 2014-03-30 17:42:04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지난 3월29일 토요일 오후 2시.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독서 커뮤니티에서 독서 토론 정모'를 열었다. 늘 참여하는 사람이 고정적이라서 새로운 멤버들이 와서 보다 더 많은 의견을 공유하고 더욱 활기를 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른 대형 책 관련 카페에 독서모임 참여공지를 올려 외부에서도 모임 신청자를 3명이나 더 받고 우리 모임에서도 5명이 신청해서 총 8명이 오기로 했다. 

하지만, 당일이 되기 하루 전부터 문자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제가 내일 일을 하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저 일이 생겨서 내일 못 가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몸이 안 좋다는 사람까지 해서 전날 무려 4명으로부터 불참 문자를 받았다. 하물며 당일에는 정모 시간인 2시10분 정도에 '저 지금 일어나서요, 가면 4시인데 어쩌죠?'라는 문자가 날아들었지 뭔가. 

장소 대여는 이미 최소인원 5명으로 잡아놓은 상태인데 모인 인원은 나까지 3명이었다. 장소비는 결국 애꿎은 참석자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기존 회비인 만원보다 더 받을 수 없어서 내가 나머지 비용 2만원 넘는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조금 화가 나기도 하면서 기운이 빠졌지만 생각해보니 나른한 주말 오후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의지를 갖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부러 시간을 빼서 참석해준 2명의 회원들을 낙심시킬 수는 없어서 마음을 다시 끌어올려 모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진행을 다 한 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활기도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인원수가 소소하게 진행되니 좀더 심도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서로의 눈을 찬찬히 바라보고 각자의 삶을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 인원수가 적으니 금세 끝나겠다고 예상했던 것은 추측에 불과했고 예약한 2시간 30분이 셋이서 아주 알차게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들어주며 꽉 채우고 나왔다.

무엇보다 이 날 나눈 책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외 1인/이레출판)'은 삶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바쁜 일상에서 짬짬이 읽기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힘들었다는 의견에 따라 함께 읽어 내려가며 해석해가는 과정이 꽤 의미 있었다. 26살의 남자 대학생, 29살의 여자 직장인. 황금 주말 피 끓는 청춘의 그들이 짬을 내서 고릿타분한 독서모임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희망적이고 진취적인지에 대한 증거가 되는 셈이었다. 

막노동일 하면서 독서모임에 나오는 청년_1
20대 청춘 둘과 삶에 대해 진진한 고민을 나눈,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

무엇보다 26살 남자청년은 주말마다 막노동 현장에 나가서 자신의 용돈과 생활비를 번다고 하는데 이 날은 특별히 모임을 위해서 그 일을 접어두고 나온 것이었다. 문득 나는 '과연 모임의 인원수가 중요한가.'라는 생각과 함께 허수의 많은 인원보다는 진수의 소수정예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인 사람을 '허수'니 '진수'니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허수이니 진수이니 하는 문제는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내어놓고 교감했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두 친구는 지금까지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거의 매번 본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날처럼 심도있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책 이야기가 그런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매개가 될 주제가 되기도 했지만 만일 이 날 우리가 단 3명으로 모이지 않았다면 풀어놓지 않았을 이야기들이 더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자주 어떤 모임을 만들 때 인원수에 얽매일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이 북적거려야만 꽤 괜찮은 모임이라거나 만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나서 공허함을 느끼며 돌아서는 때가 무척 많다. 이제 생각을 바꿔봐야 할 시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느냐 보다는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깊이 있게 마음을 나눌지에 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대가 바빠지고 정보가 많아질수록 수많은 만남이 있고 그 속에 만남에 대한 이유와 목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아는 것에 즐거움을 갖기 보다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먼저 앞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란 그저 소통만으로도 얼마든지 즐겁고 좋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순수함'을 찾아야 할 시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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