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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미술관 데이트 할까?
오늘 하루의 여유가 오래도록 기억되길 소망한다.
2014-02-27 13:12:24최종 업데이트 : 2014-02-27 13:12:24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개학하기 전에 엄마랑 미술관 데이트 할까?"

대학생 큰딸은 방학 내내 학원을 두 곳이나 다니고 틈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기 중에는 공부하느라 바쁘고, 편히 쉴 줄 알았던 방학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더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는 요즘 대학생들이다. 나름 분주하게 다니는 딸과 단 하루의 데이트는 벼르고 별러 성사되었다.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며칠 전부터 생각해두었던 수원 미술 전시관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집에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미술관을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로 가보지 못했었다. 지나칠 때 마다 언젠가는 꼭 와보자 약속만 했던 장소였다. 

봄 햇살이 겨울을 성큼 몰아낼 듯 내리쬐는 산책길을 한참 걸어갔다. 간간히 부는 바람도 차갑지 않아 데이트하기 적절한 날씨다. 

엄마랑 미술관 데이트 할까?_1
수원미술 전시관에서 데이트하다.

2014년 2월 26일 오후 2시. 미술 전시관은 몇몇 작가로 보이는 몇 분을 제외하고 관람객이 우리 모녀 둘뿐이다. 정막이 흐르는 전시관 내부를 아무 말 없이 앞뒤로 걸어보았다. 작품 가까이 다가가 재질도 살펴보고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도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진 걸까? 되도록 말을 아끼자는 약속으로 우린 말없이 걸었다.
 
제 1 전시관을 각자 둘러보고 2층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호랑이였다.
이섬결 개인전.2014년 2.25(화)~3.3(월) 작가 이섬결님께 그림 설명을 해줄 수 있는지 정중히 요청하자 흔쾌히 응답해주셨다.
 
"호랑이가 전시관에 가득하네요. 조금 무서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은데 호랑이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5년 전 쯤 친구가 호랑이를 그려달라고 요청을 해왔어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작품 하나를 완성해 선물했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호랑이를 그릴 때 마음이 편안하고 남다른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그때부터 즐겨 그리기 시작한 거 같아요."

"처음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둘러보니 평화로운 느낌이 더 강한 거 같아요. 제가 잘못 느낀 건지요?"
"아니에요.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죠. 무섭다는 사람도 있고 아기 호랑이는 귀엽다고도 해요. 엄마 품에서 뒹굴뒹굴하는 아기 호랑이는 평화로움 그 자체죠. 제대로 보신 거예요."

엄마랑 미술관 데이트 할까?_2
이섬결 작가를 만나다.

"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작가는 아기 호랑이들이 엄마 품 근처에서 한가롭게 노는 작품을 가리키셨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은 친구 남편이 있어요. 들짐승도 새끼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는데 하물며 인간이,,,말은 직접 건네지 않았지만 그분이 이 그림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길 바랐죠." 웃으며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 안에 존재한 많은 아픔이 전해져왔다. 

"저는 한가한 오후를 만끽하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이 좋네요."
나는 전시관에서 가장 큰 작품을 선택했다. 작가는 오래도록 친절히 작품 설명을 해주셨다.
 
오래전 동물원에서 보았던 호랑이는 아프고 외로워 보였다. 간간히 던져주는 사육사의 먹이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되 보였고 함께하는 가족도 없이 혼자서 울타리 안을 맴돌 뿐 이었다. 액운을 막아주는 기운을 가진 호랑이는 그렇게 힘을 잃었었다. 오늘 다시 만난 호랑이는 평화와 사랑을 전해준다. 눈동자의 빛이 그렇게 전해져 왔다. 
 
잠시후 기획 초대전이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악/음. 습관처럼 음악으로 읽었다. 소리를 전시한다니 어떤 의도일까?  단순한 소품들로 가득한 전시관에서 작가는 아직도 뭔가에 집중하는 중이다. 말 걸기가 쉽지 않을 줄 알았던 프랑스인 작가는 4년 동안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워 능숙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전시회를 합니다. 한국 불교에 관심이 많아요. 이 공간에서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자유롭게 즐기면 됩니다."
 
낯선 작품들 가운데 분해된 스피커 조각이 유리 화반 안에 잠겨있는걸 보았다.
"음은 공기로 전달되는데 물에 잠긴 스피커에서는 소리가 어떻게 전달될까요?"
호기심 가득한 물음에 작가는 짧게 대답했다. "침묵에 흠뻑 젖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 우리 모녀는 웃음으로 위기를 모면 했다. 음의 또 다른 표현이 침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미술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며 오길 잘했다는 딸의 말이 기분 좋게 들렸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면 얼마든지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데 그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게 미안했다. 이제 3월이면 개학으로 딸은 다시 학교와 학원, 아르바이트로 바빠질 것이다. 이른 아침밥을 먹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늦은 저녁에 귀가하는 생활이 반복되겠지. 딸에게 오늘 하루의 여유가 오래도록 기억되길 소망한다. 오늘 데이트는 행복했다.

수원 미술 전시관 이섬결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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