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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홍매를 사랑하였을 뿐
2014-02-14 17:06:12최종 업데이트 : 2014-02-14 17:06:12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나의 물건에 대한 애착심은 강하나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명품이나 금붙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도 딱히 끌리는 것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일단 나의 물건이란 이름패를 붙이고 나면 마르고 닳도록 수명을 다하도록 아끼고 애정을 쏟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마음을 비집고 한 자락 턱하니 붙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생겨났다. 홍매였다. 

단지 홍매를 사랑하였을 뿐_1
지난 봄 이순신 장군 생가에 피었던 홍매

지난해 이른 봄 아산 현충사에 갔다가 이순신 장군의 생가 뜰에 핀 홍매를 보고 난 후부터 찬 기운을 고고히 마주하고 있는 붉은 아름다움에 난생 처음으로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었다. 

나의 홍매에 대한 애정은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끌리고 더 소유하고 싶어졌다. 붉은 아름다움이 영원하였더라면 돗자리를 깔았을지, 눈앞으로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영원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애정이 허공중에 흩어졌다.

사람도 눈에서 멀어지면 잊혀진다는데 물건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루하루 다른 일과에 따라 움직이는 시간 한 가지에 미련을 남기고 살만큼 한가롭지도 않았다. 그러나 소멸 된 듯한 미련은 뜻하지 않게 다시 집착으로 변하게 되었다. 

어느 시민기자가 올린 매화가 있는 그릇을 보고 "아! 이거야"하고 쾌재를 불렀었다. 하지만 지인을 통하여 알아본 가격은 생활그릇으로 사용하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능하지 않으면 단념도 쉬운 것이 여자의 마음인가? 분수를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홍매에 대한 애증을 가슴 속 밑으로, 밑으로 아예 눌러 다시는 고개를 들 수 없도록 했다.

단지 홍매를 사랑하였을 뿐_2
수원박물관에 있는 홍매그림

그러나 마음 밖으로 나가지 못한 애증은 언제고 들추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벚꽃이 눈처럼 하늘을 뒤 덮을 때 수원박물관에서 다시 홍매와 마주섰다. 수도 없이 다녔던 곳이다. 서예박물관 옆으로 난 복도에 있는 한 폭의 그림. 노란 수술을 달고 붉디붉은 꽃잎을 활짝 피운 고목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매화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박물관에 갈 때마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본다. 

백화점으로 그릇 도매점으로 언젠가 보았던 매화꽃이 핀 그릇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다녔었다. 가끔 지인들과 매화꽃이 그려진 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지만 공방까지 찾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매일 끼니를 먹을 때마다 그릇에 대한 타박을 한다. 이것은 겨울에 사용하기 좋으나 무겁고 저것은 가볍고 얇아 사용하기 편리하지만 왠지 경망스럽고 꼴도 보기 싫다. 어떤 때는 반찬통 채로 먹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땐 굳이 새로운 그릇이 필요할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설거지 그릇이 안나오니까 좋지 뭐' 하는 게으른 생각이 설득력이 아예 없지는 않다. 

단지 홍매를 사랑하였을 뿐_3
홍매가 그려진 그릇

그런데 사랑이 갑자기 오는 것처럼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붉은 매화그림이 있는 그릇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슴앓이에 대한 대가로 이젠 금액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제로 애벌닦기를 하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 식탁에 펼쳐 놓았더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 같았다. 예전 집을 옮길 때 친구들이 사다준 영국황실에서 쓰는 그릇이라고, 명품이라고 거의 진열만 하고 있었던 그릇들을 확 치워버렸다.

내 마음은 홍매에 빼앗겼는데 그런 그릇이 명품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밥상을 보는 일이 즐거워졌다. 홍매에 대한 애정이 쉽게 다른 사랑으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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