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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7남매의 가족모임
2014-01-27 10:49:04최종 업데이트 : 2014-01-27 10:49:04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가족모임이 있어 충청북도 단양을 찾은 날의 이른 새벽시간. 어둠이 걷히자마자 숙소 앞의 겨울 강으로 산책을 나가기 위해, 아직 해가 뜨기도 전부터 혼자 분주하다. 23명의 대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는 어둠속에서, 행여 다른 가족들이 깰까봐 불도 못 켜고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은 후, 그래도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커피를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1
7남매와 그 자녀들. 대가족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어둠을 밀어내며 조금씩 바깥세상이 열리기 시작 한다 카메라와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들고 강을 향해 나선다. 기분 좋을 만큼 싸한 차가운 새벽공기가 제일먼저 나를 반긴다. 숙소에서 강을 찾아 내려가는 길목의 가로수들도 모두 따뜻한 옷을 입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감싸 안듯 나무 밑동을 품고 있는 볏짚이 싱싱하다. 

강변 산책로로 가기위해 계단을 내려서는데, 군더더기 없이 쨍한 겨울추위만큼 맑고 청아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이른 시간 혼자 나선 산책길이라 위험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하던 중이라 노래 부르는 주인공이 누굴까 궁금하다. 꽤 긴 계단을 중간쯤 내려가니 새벽 운동하는 사람이 지나간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산책로를 둘러보니 노래의 주인공은 데크길을 따라 서있는, 가로등 기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다. 

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2
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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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3
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3
  
아쉬운 듯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어둠과 뒤섞인, 파르스름한 얼어붙은 겨울 강이 나를 몽롱하게 한다. 눈과 귀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 들고 온 보온병을 열어 커피 향을 더한다. 이 시간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꽁꽁 얼어 불투명의 빛을 띠고 있는 강 사이사이로 채 얼음이 되지 못한 하얀 눈이, 은박지를 한 번 구겼다 펼쳐 놓은 것처럼, 희끗희끗 빛을 내고 있는 겨울강도 온전히 나만의 것이고, 골동품을 보는 듯 멋스러운 가로등에 매달린 스피커의 노랫소리도 나만의 것이다. 누군가 나만을 위해 이처럼 멋진 풍경을 준비해 놓고 초대장을 보냈나보다.

단양은 참으로 예쁜 곳이다. 남한강 줄기가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 도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조금 지대만 높아도, 건물 층수만 높아져도 강물을 늘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도무지 속도가 나질 않는다. 한 발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면 또 다른 겨울의 모습이 나를 붙잡아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어둠과 섞여, 탁한 느낌의 진한 파르스름함으로 보이던 겨울 강은 조금씩 빛을 더하면서 맑은 수채화의 느낌으로 변해간다. 잎사귀를 모두 떨궈내 버린 겨울나무들은 이제야 자유로움을 찾은 듯 수 십개의 날개를 펼치고 비행을 준비하는 듯하다. 
강 건너 언덕에서는 뜻하지 않게 시인 백석을 만난다. 백석이 즐겨 읊던 자작나무가 보이니 그 자작나무에서 백석을 불러내 만나보는 것이다. 강 건너 나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 눈에 자작나무처럼 보이니 혼자 자작나무라고 생각한다.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날의 이른 아침이라 손이 시리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느라 장갑을 벗었다 꼈다를 반복한 탓이다. 손도 시린데 이제 사진은 그만 찍어야지 하고 다짐했다가도 몇 발자국 걷다보면 또 다른 모습이 나를 유혹한다. 산책로의 끝에서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반대편을 향해 걷는다.

내가 들어 온 위치가 산책로 중간쯤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반쪽의 길에는 또 어떤 색깔의 겨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다. 역시 그곳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철 지난 비닐하우스처럼 앙상하고 초라한 터널이 보인다. 장미터널이다. 꽤 긴 터널인가 보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 지붕위에 장미꽃 몇 송이가 피어 있다. 걸어가는 동안 듬성듬성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피어 있다. 아마도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터널안의 높은 온도로 인해 계절을 모르고 피어났던 꽃이 겨울 추위에 그대로 얼어 버린 것 같다. 안쓰러우면서도 아침 산책길에 또 다른 즐거움을 더해준 붉은 장미가 사랑스럽다. 

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4
단양으로 간 소봉댁네 7남매 _4

겨울 강변의 정취에 빠져서 거의 두 시간을 거닐었나보다. 전화벨이 울려 받으니 아침 먹으러 들어오라는 동서의 목소리다. 7남매의 맏며느리. 위로 누나가 셋, 아래로 여동생 한 명, 남동생이 둘인, 딱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남자의 아내. 맏며느리지만 참 어정쩡한 위치의 맏며느리다.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여러 곳에 흩어져 살다보니 명절날도 다 함께 모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1년에 한 번씩 가족모임을 하는데, 처음에는 각자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집에서 모임을 가지다가 두 번 정도의 순서가 지난 다음부터는 아예 집 밖으로 나와서 모임을 갖는다. 가족들 얼굴도 보고 낯선 고장의 풍경들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시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두 분에게서 뻗은 자손이 벌써 29명의 대식구가 되었다. 7남매의 자녀들 중 아직 결혼한 자녀가 없어도 이렇게 대가족이 형성 되었는데, 이제 결혼 적령기에 접어 든 몇 명의 조카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수는 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가족모임에는 이미 처녀, 총각인 조카들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한다.

이번 모임에는 대구에서 군 생활 중인 둘째 시누이네 조카아이도 참석을 했다. 성격이 꼼꼼한 그 녀석은 어릴 때 자기 물건이나 장난감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해놓고 어느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던 우리 아들 녀석이 손만 가까이대도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아이다. 

초등학교 입학 며칠 만에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몸에 쏟아져 화상으로 병원 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고생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늠름한 군인아저씨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조카아이가 대견하고 든든하다. 이런 대식구의 아침식사는 시누이들과 동서들에게 맡기고 정말 아름다운 겨울강변의 풍경을 만끽하며 혼자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아침 식사 후, 숙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기로 한다. 이번 모임에는 6명의 아이들이 빠져 총 23명의 가족들이 사진을 찍는다. 어른부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집안의 막내 조카 녀석까지 모두들 신나고 즐겁다. 단체사진에 이어 각자의 가족들끼리 삼삼오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바로 밑의 시누이네 가족은,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참석을 하지 않아 신혼처럼 둘만의 분위기를 내며 사진을 찍던 중, 겨울이라 작동이 멈춘 분수대 난간에 낑낑대며 아가씨를 올려 앉히는 시누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멋진 포즈로 아내를 사진 찍고 싶은 남편의 욕심이 보는 이들을 박장대소하게 한다. 겨우 걸터앉아 위태로운 자세를 잡고 있는 아가씨는 빨리 내려오고 싶어 하는데 욕심 많은 남편은 다양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내려줄 생각을 않는다. 

시끌벅적, 한바탕 기념촬영 후 드디어 단양8경을 향해 나선다. 단양8경으로 유명한 고장, 그곳에 우리가족의 아름다운 추억을 더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짧지만 행복 가득한 가족모임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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