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집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
2014-01-25 11:06:32최종 업데이트 : 2014-01-25 11:06:32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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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 있다. 감동을 주는 명작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에 쌓인 세월의 깊이만큼 작품의 값어치도 올라가는 것 일게다. 그러다보니 명작,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림은 무수히 많은 복사본과 위작들이 탄생한다. 원작과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위작의 조건일 것이다. 어느 중국집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_1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앉아있는 테이블과 조금 떨어진 곳에 그림이 걸려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던 중, 드디어 이상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냈다. 등장인물인 예수님과 열두제자가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식탁위의 음식들이 원작과 다르게 그려져 있다. 예수님 앞에 놓여진 짜장면 그릇, 그리고 원작에서 빌립보 인듯한 인물의 한 손에는 중국집 배달가방이, 또 다른 손에는 이제 막 배달가방에서 꺼낸 짬뽕 한 그릇이 들려져 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의 시선이 참으로 재미나다. 옆에 있는 제자의 몫인듯한 짬뽕 그릇에 눈길을 주고 계신다. 참으로 먹고 싶은 듯 간절한 눈빛이다. 열두 제자중의 한명인 가리옷 사람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알고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나누는 최후의 만찬. 빵과 포도주를 일러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말한 그 거룩하고 슬픈 그림이 아주 유쾌하고 재미난 그림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그림이 정말 유쾌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거룩한 내용의 명작을 단지 장삿속으로 희화화 시켰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성을 들인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데 있다. 만약 이 작품이 조잡함으로 대충 그려져 있었다면 기독교인인 기자의 눈에 이처럼 유쾌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후의 만찬 외에도 몇 작품이 걸려 있다. 신비스러운 미소로 늘 나를 바라보던 모나리자의 눈길은, 식탁 앞에 놓인 음식접시로 향해 있다. 식욕을 절제 할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들로 인해 이미 모나리자는 뚱보아줌마가 되어있다. 그럼에도 식탐 가득한 눈빛으로 음식을 보고 있는 모나리자의 그림은, 보는 사람까지 그림속의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든다. 어느 중국집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_2 어느 중국집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_3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중국집 배달가방을 한 손에 들고 말위에 앉아 어딘가를 가리킨다. 배달 전화만 오면 저 험준한 알프스 산맥이라도 넘어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또 한 가지 기발한 작품이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온 몸으로 삶과 운명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의 조각 작품이 바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각하는 사람이 고뇌하고 갈등 하는건 그렇게 거창하고 심오한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고뇌는 바로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의 아주 원초적인 고뇌였던 것이다. 어느 중국집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_4 유쾌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그림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또 무엇인가는 버려야 하는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말할까.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의 고민이 바로 우리 삶의 모든 고민과 고뇌를 대변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점심식사는, 유쾌하면서도 재미난 그림으로 인해 더욱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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