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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제10기 화성박물관대학 전주 답사
2013-12-19 13:05:52최종 업데이트 : 2013-12-19 13:05:52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역대 왕들의 행적을 편년체로 기록한 것으로 1대 태조실록에서부터 철종까지 472년간 걸친 28종의 실록을 지칭하는 기록물로 국보 제151호이다. 
경기전과 어진박물관을 비롯하여 전주일대를 제10기 화성박물관대학 답사를 다녀왔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배려가 아름답다

12월 18일 수요일은 삼한사온의 겨울날씨 중에 사온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전주와 수원의 지역적인 기후 영향도 있었겠지만 두꺼운 겨울점퍼가 거추장스럽게 생각 될 정도로 완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거리의 화단 꽃이나 절기를 잊은 나무들까지 새싹을 기다리는 듯 나뭇가지 끝이 붉게 물이 돌고 있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일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이른 점심을 콩나물국밥으로 요기를 때웠다. 전주에 오면 느긋하게 비빔밥을 먹어야했는데 일정이 있으니 바삐 먹고 보고 듣게 될 새로운 것에 더 마음이 조급하다.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_1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_1

작년 가을에 방문하고 두 번째로 찾은 전주 한옥마을은 처음 왔을 때 생경스러움 보다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왔다. 야트막하게 잘 정돈 된 한옥의 거리가 단정하고 집집마다 특색 있게 붙여진 문패도 정감 있다. 도로와 인도를 구별하는 가림막이 없어도 바닥의 소재로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배려가 아름답다. 
아스팔트의 차도와 자연석을 깔아 조성한 인도를 구분하여 사람과 차들의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한 것이 화분으로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려는 행궁동의 공방거리와는 확실하게 차별성이 있다. 태조로 방향으로 쭉 이어진 게스트 하우스는 방문했던 여행자들이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겠다.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의 이곳에서 야연(野宴)을 베풀었다는 오목대에 오르니 700여 채의 한옥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전통 가옥 한옥 사이에 잡초처럼 뜬금없이 서 있는 양옥을 보면서 전통을 지키려는 자와 생활의 편리함을 쫓는 자의 양면성을 볼 수 있었다.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답사 일정 중에 가장 관심의 대상이었던 곳은 경기전과 어진 박물관이다. 경기전은 1410년 (태종10년)에 세워진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경기전을 들어가기 전 인도의 문양(文樣)이 달라 자세히 보면 성곽과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성곽이 있던 곳으로 인도의 문양으로 성안과 성밖을 표시하고 있다.

경기전 입구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에서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태조 어진을 봉안한 곳 경기전의 위상을 짐작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진전에 붙어 있는 어찌 보면 커피 알갱이도 같고 두 개가 납작 붙은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 낳게 하는 모양이 있다. 그것은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화재는 현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위험이 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작년에 보이지 않았던 여섯 개의 대형 드므가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_3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_3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_2
푸른 빛깔의 곤룡포. 새로운 왕조를 열다 _2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61세 때 모습 모사로 곤룡포의 색깔이 유일하게 푸른빛을 띠고 있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황색의 곤룡포를 입었으며 역대 왕들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었었다. 곤룡포의 푸른색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푸른색의 의미는 몽고반점의 시작과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푸른색 곤룡포는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는 뜻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왕조를 연 왕인만큼 다른 왕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 태조 이성계만 입은 것이 아닌가 한다.

경기전 안에는 조선 역대 왕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 보관하였던 사고(史庫)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4부로 편찬되어 한양의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로 나눠서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다. 
경기전의 참봉이었던 오희길이 그것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태인의 유생이었던 안의와 손흥록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 동굴에 옮겨 보관하였다. 

숙직일지와 같은 조선왕조실록 보존 과정을 기록한 임계기사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정읍에서 해주를 거쳐 강화도까지 옮겨 보관하였고 조선후기에는 전국 5곳의 사찰에서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기록문화 유산 11가지 중에 가장 먼저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함께 지정되었다. 조선의 문화는 기록의 문화라고도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수 없는 난관 속에서 현세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있는 권력자들의 노력보다 밑에서 받쳐주는 백성들의 힘이 미천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10월 23일부터 시작한 '조선시대의 왕실문화2'를 화성박물관에서 강의를 듣고 유적지를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니 멀게만 느껴지던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이 현재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는 의미 있는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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