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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머무는 자리, 힌두성지 파수파티
죽음과 삶, 나는 오래됨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2013-05-01 15:46:05최종 업데이트 : 2013-05-01 15:46:0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어느 날 한 목동이 젖소에서 갑자기 젖이 나오지 않자 이를 수상히 여겨 그 젖소를 미행했다. 젖소는 한참을 걷더니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젖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후일 이곳을 파헤쳐 들어가니 빛이 나서 계속 파들어 갔고 불길이 솟아나며 땅을 파던 목동은 그 불길에 타죽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는 시바신이 상징물이 발견되어 이를 중심으로 사원을 세웠다."

이 전설은 파수파티
(네팔 힌두사원)라는 사원이 지어진 유래가 되어 전해진다. 아마도 그래서 힌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소를 숭배한다고 알려졌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바신의 성지라는 파수파티에는 그 어떤 신보다도 철저하게 숭배하는 동으로 주조된 커다란 소가 모셔져 있다. 그곳은 파수파티 자체가 성지인데 그 성지 안에서도 성지 중에 성지다

시민기자는 어느 날 밖에서 얼핏 엿보았을 뿐이다
. 그도 잠시 곧 관리인들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네팔인과 인도인, 힌두신자만이 알현이 허용되는 소() ()이다
이미 기사를 통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힌두교는 다신교다. 한 집안의 가족이라도 태어난 날이 다르면 자신이 믿는 신이 자유롭게 결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힌두교 신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과 다름없이 힌두교의 모든 신들을 숭배한다.

사색이 머무는 자리, 힌두성지 파수파티_1
화장을 하는 사람이 정성스럽다. 이승을 떠나는 사람에게 두 손 모아 불을 지핀다. 그리고 파수파티를 찾은 사람들은 호흡한다. 저기 누운 사람은 누구일까?

사색이 머무는 자리, 힌두성지 파수파티_2
관광객들은 이색적인 화장터 풍경을 살펴보고 있다. 그들도 낯선 사람의 육신을 호흡으로 함께 들이마신 사람들이다.

벌써 몇 번째인가? 파수파티를 찾고 나를 찾아온 지인들을 안내하는 일, 이번에 찾으신 분은 그중 가장 연세가 많으시다
66
세, 삶의 희노애락에 대해 절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으리라. 아마 신의 성지이자. 그 신이 생과 사를 관장한다는 신일 때, 인간은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제의 의식이 거행된다. 날마다 파수파티는 멈추지 않고 공장 기계에 컨베어 밸트처럼 돌아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염을 하고 다른 편에서는 화장을 하고 있다
. 하루에도 수십 명씩 진행되는 화장, 그렇게 사람이 지고 있다. 그리고 사라지는 사람들은 지상에 공기로 퍼져나가고 일부는 재가 되어서 강물이 되어 흐른다
사상이나 철학, 교육정도, 세상사에 대한 인지의식의 편차에 무관하게 모든 일상의 생각을 멈추고 입을 다문다. 사색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바신은 위대하다. 사유의 깊이와 겉으로 드러난 그 어떤 지위와 권능에 무관하게 성지 파수파티에서는 사색하게 되기 때문이다.

의문
,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멈추어 섰다. 호흡을 통해 그 어떤 인연도 없던 사람들이 내 몸에 들어온다. 살이 타고 뼈가 타는 야릇한 공기 맛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오대양 육대주의 모든 사람들이 힌두교 제의의식 속에서 행해지는 화장터의 모습을 살피며 사색에 빠져들고 있다
타파스(thapas, 고행)를 행하는 사두들의 집이 있고, 끝없이 이어지는 암송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줄기 빛살처럼 바람이 되어 오가는 관광객들은 파수파티의 흔적을 안고 또 한 생을 살아가리라.

사색이 머무는 자리, 힌두성지 파수파티_3
사두들이 모여 앉았다. 이색적인 사두들은 이제 관광상품화한 모습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사색이 머무는 자리, 힌두성지 파수파티_4
파수파티를 찾은 지인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화장터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나는 또 오고 또 갈 것이다
. 어찌 보면 수도 없는 낯선 인연들을 내 몸 안에 담는 것이다. 호흡을 통해서 말이다. 아마 밀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상사람 모두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깊은 영혼도 내게 들어와 앉을까? 혹여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깊고 깊은 것이라도 결국 삶과 죽음의 질문일 것이다

그대는 살고 있는가
? 그대는 죽음을 아는가? 살고 있는 그대는 삶을 아는가? 어쩌면 우리는 날마다 모르는 길을 가고 모르는 채 지나오는 것 같다. 날마다 새로운 모름을 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안다고 여길 때 파괴와 실패가 연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모른다. 나는 오늘도 모른 체 또 한 걸음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

오월의 꽃바람이 화려하다
. 무덤의 할미꽃들도 화려하다. 청춘은 더욱 화려하다. 그러나 늙음과 오래됨의 화려함만 하겠는가? 오래됨에 대해 경배하자. 오늘은 오래된 오월을 사색해본다.

, 힌두교, 삶과 죽음, 파수파티, 화장, 철학, 사두, 김형효, 네팔, 카트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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